화학물질 사고 대응매뉴얼 재점검 필요
5명 사망, 2,500여명 건강피해 경제적 피해도 177억여원에 달해 산업재해가 사회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7일 구미국가4산업단지 내 화학물질 제조공장인 H사에서 불산이 든 20t 탱크로리 호스 연결 작업 중 가스누출과 폭발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5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했다. 사고 후 유독가스(불산)가 대량 발생하면서 초기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불산이 인근지역까지 확산되면서 사고현장 주변 마을의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고 인근 9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는 등 긴급상황이 발생했다.
피해도 심각했다. 화재진압에 참여했던 소방관을 비롯해 인근사업장 근로자, 주민 등 총 2,563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대부분 피부 발진과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피해도 총 77개사에 거쳐 177억 1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주민들의 주 경제원인 농작물과 가축들의 2차 피해도 매우 크게 나타났다. 7일 현재까지 구미시에 접수된 피해현황에 따르면 농작물 212㏊, 가축 3,209마리가 피해를 입었다. 기타 차량 및 건물외벽이 부식되는 등의 피해도 접수됐다.
피해는 사고 발생지에서 약 200m 떨어진 산동면 봉산리와 임천리 지역에 집중됐다. 이 지역의 논, 밭은 성한 곳이 없고 비닐하우스 내 포도, 멜론 등은 완전히 말라 죽었다. 소와 돼지 등 가축들도 콧물을 흘리고 사료섭취를 거부하는 등의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도 사고지역은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가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을 정도다. 앞으로 피해지역이 더 확산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피해 왜 컸나
이번사고는 환경안전시스템 측면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우선 사고가 발생한 H공장에서 일하던 7명의 근로자들은 방호복 등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불산가스를 다뤄 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평소에도 작업 중 가스가 수시로 새나오는 등 위험한 상황이었는데도 현장에는 관리감독자조차 선임돼있지 않았다. 사전 안전관리체계가 전무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가 됐던 것은 사고 발생 후 대처 과정이었다. 사고 후 불산이 누출된 것이 확인됐으면 일단 중화작업을 먼저 해 유독가스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경우 중화작업보다 폭발로 인한 불길을 잡는데 우선해 초동조치가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불산가스가 대기 중으로 널리 퍼지면서 진화작업에 참여했던 소방관들은 물론 인근의 근로자와 주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미쳤다.
뒤늦게 이뤄진 중화작업도 문제였다. 맹독성 화학물질인 불산의 확산을 막으려면 소석회를 뿌려야했으나 사고가 발생한 업체와 소방서에서는 이를 미리 갖춰놓지 못했다. 구미시 측에서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나 소석회 14포대를 확보했으나 교통통제로 결국 사고 현장에 공급하지 못했다. 하루가 지난 28일 오후 국과수의 감식작업이 끝난 후에야 소석회를 사용한 중화작업이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대피체계의 미흡함도 여실히 드러났다. 구미시는 사고 발생 3시간 30분이 흐른 뒤에야 구미산단 4단지 입주업체에 대피할 것을 통보하고, 인근 주민들에게는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나 대피조치를 취했다. 피해 사업장 인근 마을의 이장이 주민들에게 미리 대피하라고 방송하지 않았다면 더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여기에 주민들이 신속히 대피할 수 있는 장소가 미리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종합하면 이번 사고는 사전 안전관리체계는 물론 사고 발생 시 대응조치, 관련기관 간 협조체계 등 여러 부분에서 총체적인 문제점을 노출시켰다고 분석해볼 수 있다.
불산,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가
그렇다면 이번에 누출된 불산은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을까. 불산은 기체 상태로 체내에 흡수되면 호흡기 점막과 뼈를 손상시킬 수 있으며 신경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경북대 수의학과 김길수 교수는 “불산은 약산이어서 순간적인 자극은 약하지만 신체조직, 수분과 만나면 수소하고 결합해 파워가 강해진다”라며 “특히 호흡기나 피부로 불산에 노출되면 조직이 반응을 하면서 녹아내려 조직 안에 있는 수분 자체가 수분으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며, 치료법도 마땅치 않다”고 설명했다.
만약 가축이 불산에 노출되면 당장은 반응이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반응을 보일 수 있으며 야생동물과 곤충, 들쥐 등도 자취를 감출 수 있다고 소개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불산에 노출된 가축은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벼와 농작물도 불에 태워 없애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그는 경고했다. 태우는 과정에서 잔류가스가 나올 수 있어 소각시설에서 완전히 없애는 게 좋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불산은 노출허용농도가 약하더라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학교에서도 실험하지 않는다”라며 “구미지역 불산피해는 현재로선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정부지원 본격화
이번사고는 수천명이 피해를 봤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지난 4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차관회의를 개최하여 사고에 대한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2차피해 확산 방지와 향후 지원대책 등을 논의했다. 회의에서 환경부 등 유관기관들은 국민 불안감이 확산되지 않도록 식수, 대기 조사결과 및 방제관련 사항들을 정리해 신속히 발표키로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환경오염 조사결과 사고지점과 인근 주거지역의 대기에서는 불산가스가 검출되지 않고 있으며, 구미 한천 등 4개 지점의 수질 측정결과에서도 오염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현재 사고 인근지역의 가축과 농산물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는 상태이며, 앞으로 토양오염에 대한 조사를 한 후 필요하다면 방제작업 등을 추가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 5일부터 ‘재난합동조사단’을 구성해 피해규모조사를 실시하고, 8일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의 농작물, 축산, 산림, 주민건강 등 분야별로 지원기준이 수립되고, 피해에 대한 행정ㆍ재정적 지원이 이뤄지게 됐다.
그리고 정부는 유사사고를 방지하고자 환경부, 고용부, 지경부, 방재청 등 정부합동으로 유독물 취급사업장 등에 대해 10월 중 특별점검을 실시키로 했다. 특히 국무총리실에서는 이번 사고와 관련한 제도개선 사항들을 별도 리스트로 작성하여 이행여부를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가기로 했다.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 이어져
정부가 사고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노동계 등 각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정부의 조치가 너무 늦었고, 그 대책도 미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구경북녹색연합은 성명을 통해 “불산가스에 노출된 임야 및 농경지의 경우 관리없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국가차원에서 피해지역 조사 및 주민건강 조사, 오염된 토양에 대한 방제작업을 하루 빨리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내고 즉각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노총은 산재사고업체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며, ‘기업살인법’ 등을 제정해 사고발생 사업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아울러 이번 사고는 지난 5일 시작된 2012년 국정감사에서도 화두로 제기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사고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대처를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민주통합당 한정애 의원도 “1차 대피명령이 발령됐는데도 일부 공장은 여전히 가동됐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며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자체나 부처별로 맡은 역할을 충분히 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의 이완영 의원은 “대구환경청이 1시간여가 지나 사고를 신고받아 대처도 늦었다”고 전제하면서 “피해주민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인해 달라”고 주문했다.
실제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비상계획 실무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도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은 “독극물 처리업체를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하는 게 원칙인데 주민들은 모르고 있었고, 사고현장에서는 중화제 배치, 방제방법에 대한 숙지도 안 된 상태였다”며 “이번 사고는 위기에 대한 대비가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인재”라고 못 박았다.
민주통합당 홍영표 의원은 “매뉴얼에 따르면 상황종료 선언 전에 주민이 현장에 복귀해서는 안 되는데 종료선언 5시간 30분 전에 주민을 복귀시켰다”며 “정부가 마련한 위기대응 매뉴얼을 정부 자체가 지키지 않은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속한 대응 조치 및 유관기관 간 협력체계 구축 시급
유독물질을 취급하는 산업단지는 구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 각지의 산업단지에도 이와 같은 사업장이 매우 많이 존재한다. 전국적으로 약 6,000개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 산업단지에서 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한 가지 예로 여수산단에서 불산을 취급하는 대규모 공장인 A사도 최근 2차례 사고가 발생하면서 소방서 등 관련기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 사업장 뿐만이 아니다. 여수산단 B공장에서는 지난 6월 화학물질을 이송하던 중 가스누출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65명이 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또 C공장에서는 지난 5월 내부압력 상승으로 인해 탱크가 파손되기도 했으며, 6월에는 대표적 유독 물질인 포스겐이 누출돼 긴급방제작업이 진행된 바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들 위험업종에 대한 안전관리체계는 허술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에 이번 사고를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환경연구소 김정수 부소장은 “업무의 비체계성, 규정과 현장간의 집행격차, 관계 공무원의 무사안일한 태도 등이 돌발적인 가스유출과 맞물리면서 구미산단에 재난을 일으켰다”라며 “여기에 불산의 위험에 대한 의사소통 부재, 안전기준 설정 오류를 비롯한 기술 부적합성 등으로 대응 단계에서도 실패했으며, 피해조사 단계에서도 피해범위 축소은폐, 사고 원인 및 책임 부담 전가 등의 행태가 만연했다”며 이번사고가 총제적인 문제점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실효성 있는 자체방제계획을 구축하는 것과 동시에 주민 대피를 포함한 화학공장 안전체계를 전반적으로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라며 “특히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가능한 정부 대응체계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박정임 순천향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도 “산업안전보건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등 법 적용만 잘했어도 피해를 막을 수 있었지만, 이같은 기초적인 안전관리 사항도 지켜지지 않았다”라며 “이들 법들이 현장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게끔 하는 방향으로 유해물질 관리체계를 손질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한편, 현재 국내 규제 대상 물질은 ▲유독물 ▲취급 제한물질 ▲사고대비 물질 ▲관찰 물질 ▲취급 금지물질 등 5가지로 분류돼 있다. 구미에서 유출된 불산은 유독물질로 구분돼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또 불산 등 625종의 유독물을 취급하는 공장에 대한 허가는 시·군·구가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돼 있는 국내 규제대상 물질 관리체계의 재정비가 절실하다는 주장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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