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아픈 마음은 누가 어루만져 주나?
소방관의 아픈 마음은 누가 어루만져 주나?
  • 승인 2012.10.31
  • 호수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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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소방안전학교 김태영 소방경
근래에 들어 국민들의 소방 서비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비상 상황에 닥치면 다급한 마음에 119로 전화를 건다.

긴급 신고 전화를 받으면 119 대원들은 즉시 현장으로 출동한다. 술에 취해 하수도 맨홀에 지갑을 빠뜨렸다는 여성의 신고나, 주택 천정에 도둑고양이가 들어가 시끄럽다는 신고에도 일단은 현장에 나가 신고자의 안전을 파악하는 것이 119대원들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황당한 신고는 대원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사건 신고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소한 119대원들이 받는 정신적인 충격 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대형 참사 현장에서 중상자를 구조하거나 사망자를 인양할 때의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는 것보다는 싱겁고 허탈하기는 해도 이런 황당한 사건이 백 배, 천 배 정신적으로 안도를 주기 때문이다.

119대원으로서 구조현장에서 몇 년 이상 근무하게 되면 크든 작든 정신적 외상(trauma)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교통사고나 화재 현장에서 끔찍한 부상을 당한 피해자들을 볼 때면 그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심해진다.

2011년 소방방재청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소방공무원 3만여 명 중 5%인 1,452명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최근 소방공무원 중 39.7%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또한 2008년부터 2011년 7월까지는 총 26명의 소방공무원이 직무 관련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살을 했다.

필자가 소방관들의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후유증을 심각하게 느꼈던 것은 인천소방안전학교에서 PTSD 과목 수업을 맡으면서부터이다. 교육생들의 사례발표를 통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소방관의 가족들에게도 이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일본은 한신대지진 이후 효고현에 정신건강센터를 설립해 소방관들에게 일 년에 두 차례씩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시설은 소방관들의 가족 또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운 선진 소방 환경이다.

1990년대 이후 UN과 국제적십자사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이미 심리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FEMA에서는 화재나 구조의 재난현장에 재난심리전문가가 같이 출동하여 현장에서 즉시 심리 카운셀링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브랜드 중 국민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높은 브랜드를 묻는다면, 필자는 무조건 “119”라고 말하겠다. 언제 어디서든 위급한 상황이 오면, 국민들의 머릿속에 단번에 생각나는 번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러한 최고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내부 고객인 소방관들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많이 늦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소방차가 아닌 소방관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루 빨리 소방관들을 위한 정신건강센터를 설립해 정기적인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소방관들의 건강한 정신에서 비롯되는 따뜻한 손길이야말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진정한 구조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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