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과 생명 사이
불꽃과 생명 사이
  • 승인 2012.12.05
  • 호수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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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중 | 서울강동소방서 예방과장
작업인부 허씨는 13호 냉동실 앞 통로에서 냉동 파이프 보강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냉동기 인터쿨러팬 주변으로 파란색 용접 불꽃이 넘실거리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화재 발생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분출됐다.

13호 냉동실에서 출구까지의 거리는 190m이었지만, 화염이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분이었다. 검은 연기는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일대를 완전히 뒤덮었다. 40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천 지하 냉동창고 화재참사는 이렇게 발생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하 냉동창고에서는 냉방공급시설과 조명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전기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창고 건물은 샌드위치 패널로, 바닥과 천장은 물론 구획을 나누는 격벽에까지 10㎝ 두께로 단열재인 우레탄폼을 도포하였다. 사고 당시 내부는 인화성 유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출입구에서 먼 거리에 있는 13호 냉동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꽃이 유증기에 옮겨 붙으면서 순식간에 확대됐다. 13호실에는 단열재로 도포하고 쓰다 남은 우레탄폼이 200리터짜리로 15통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는 모두 57명이 작업하고 있었다. 화재를 최초 목격한 냉동실 13호실 작업자 일부와 화물하역장 출입구 작업자만이 탈출했다. 대다수의 작업자들은 화재발생 사실을 몰랐다. 전기실과 기계실 인부 40여명은 순식간에 퍼진 화염과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소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숨졌다.

사고현장은 건물바닥 면적이 22,000㎡를 넘는 대형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방화구획이 없었다. 또 30개실로 나누어진 내부는 가로 187m, 세로 121m로 축구장 2개 크기에 해당하는 넓이였는데도 비상구는 1개 밖에 없었다. 좌우측 통로 끝에 비상구가 더 있었더라면 인명피해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이 냉동창고 화재는 영업 개시일에 맞춰 공기를 서두른 것도 문제였다. 공기가 임박하여 여러 하청업체에서 나온 인부들이 뒤섞여 한꺼번에 위험한 작업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전기배선 작업 중에 발생한 스파크 또는 배관을 자를 때 나는 불티가 발화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뿐인가 대형공사임에도 안전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한명도 없었다. 그리고 소방시설 오작동을 이유로 기동 스위치를 수동으로 전환해 놓은 것도 상식 밖이었다. 스프링클러, 화재경보설비, 방화 셔터만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기계실이나 전기실쪽에서 작업하던 근로자의 상당수가 대피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사를 시행할 때는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화재에 대비하여 경보시설 등 소방시설이 작동되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유증기가 발생될 수 있는 작업 시에는 충분한 환기를 실시해야 한다. 또 작업자 투입 전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라이터, 담배 등 화재발생 원인이 될 수 있는 물품의 반입을 금지하는 것도 기본수칙이다. 공사현장에는 소화기도 필수적으로 비치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번 냉동창고 화재는 불에 잘 타는 샌드위치 패널이 화를 키웠다. 샌드위치 패널은 가격이 저렴하고 보온성도 뛰어나다. 하지만 불에는 쉽게 연소되고 유독가스를 뿜어낸다. 일단 불이 발생하면 판넬이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철판사이에는 스티로폼이 채워져 있어 물을 뿌려도 잘 꺼지지 않는다.

소방관들은 판넬에서 불이 났다고 하면 날밤을 새우기가 일쑤여서 ‘지저분한 화재’라고 생각한다. 값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건축규제를 통해 불에 타지 않는 난연 건축자재를 의무 사용토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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