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진 | 그림, 김주헌
제1부 탐욕의 성(性) <19회>
“그래, 너무 안됐고 너무 안타까워… 같은 여자로서… 다시 내 이야기를 하자. 어쨌든 난 그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출소 후에 살아갈 길을 연구한 거야. 여자가 혼자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런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어느 역술학 책을 한 권 보게 되었는데 그 책 속에 손금, 사주, 관상들을 볼 수 있는 기초 상식이 들어 있었고 난 그것을 통달했지. 한 권의 책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
출소 뒤에는 역술 학원에 얼마간 다니면서 역술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대구 어느 대학교 주변에다 전통 찻집 겸 ‘역술학사 주점’이라는 간판을 걸고 가게를 내었어. 그랬더니 그게 운 때가 맞았는지 요즘 대학생들, 특히 졸업이 가까워 오는 학생들이 마구 줄을 지어 오는 거야. 그들에겐 취직과 결혼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궁금증과 불안심리가 매우 팽배하더라고.
난 그들의 심리를 파고 들어간 거야. 차 한 잔 마셔도 손금을 봐주고 동동주 한 되 마셔도 사주 그냥 봐주니까 소문이 퍼지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그런 생각들이 그들을 자극시킨 모양이야. 친구가 친구를 끌고 몰려오는 거야.

요즘 아이들 참 발랄하더라. 누가 보거나 말거나 키스하는 것 정도는 예사고 학교 부근에서 계약 동거래나 좌우지간 성 개방 물결은 대학가 주변에서부터 일어나는 것 같더라고. 우리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예를 들어 여학생이 남자친구더러 야, 너 나 한번 따먹었다고 따라다니지 마. 그리고 나 오늘밤 너하고 자고 싶어. 보통이구… 놀랐어.
어쨌든 요즘 대학생들 재미있는 것은 남학생들에게는 앞으로 예쁘고 돈 많은 부잣집 딸과 결혼하겠다고 기분 좋은 농담 한마디 해주면 입이 찢어지고 여학생들에게는 잘생긴 오빠 만나 시집 잘 가겠다고 보너스로 한마디 해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 그러면 찻값 술값 서로 낸다고 싸우기도 하구 어쨌든 재미있는 나날이었지. 거기다 나도 학사 출신이니까 그들과 대화가 통했던가봐.
그러던 어느 날 그 곳 대학 신문에 내가 ‘화제의 인물’로 특집기사에 실려 나왔어. 그랬더니 우리 가게는 더욱 유명세를 떨친 거야. 수입도 상상 이외였고 나중엔 돈도 귀찮을 정도였지. 거기다가 나는 가게 한쪽 벽면에다 자유 낙서판 이라는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 두고 에이포 용지 수 십장씩 붙여 두었지.
그랬더니 어떤 학생들은 거기다가 그럴듯한 시와 그리고 풍자적인 만화, 위인들의 명언 들을 남기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들, 아마 미대생들 이었나봐, 멋진 남녀의 누드 그림을 사진보다 더 정교하게 그려 놓기도 하고 또 어떤 여대생들은 술에 취해서 남성의 발기된 그것을 그려 놓고 거기에다 술 주전자를 걸어 놓아도 수그러들지 않은 힘센 남성을 예술적으로 그려 놓고 가는 경우도 있었지.
서로 쳐다보고 깔깔 대면서 말이야. 재미있지? 청춘의 뜨거운 열정의 발산이고 익살과 풍자가 어우러진 학창시절의 낭만들이었겠지만… 난 그때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고 가끔 쓸쓸히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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