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근로자 김순호씨
인천산재병원 전통공예실의 도자기 진열대에는 수많은 산재근로자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산재근로자들이 고통을 참아가며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빚어낸 작품이기에 이곳 도자기에는 본연의 멋을 넘어선 또 다른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그것은 아마 재기를 향한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이 간절하게 묻어 나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천천히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유달리 눈길을 사로잡는 몇 개의 작품이 있다. 기본을 지키면서도 도예가 자신만의 특색을 한껏 담아냈음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만든 이를 보고 싶은 마음을 거둘 수가 없어 담당 선생님께 여쭤보니 옅은 미소와 함께 손짓으로 한 사내를 가리킨다.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는 왼손만을 이용해 말없이 도자기를 빚고 있는 한 산재근로자가 있었다. 그것이 김순호(50)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산재근로자들이 고통을 참아가며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빚어낸 작품이기에 이곳 도자기에는 본연의 멋을 넘어선 또 다른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그것은 아마 재기를 향한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이 간절하게 묻어 나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천천히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유달리 눈길을 사로잡는 몇 개의 작품이 있다. 기본을 지키면서도 도예가 자신만의 특색을 한껏 담아냈음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만든 이를 보고 싶은 마음을 거둘 수가 없어 담당 선생님께 여쭤보니 옅은 미소와 함께 손짓으로 한 사내를 가리킨다.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는 왼손만을 이용해 말없이 도자기를 빚고 있는 한 산재근로자가 있었다. 그것이 김순호(50)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공장에서 안전사고 입어

1985년 12월. 김순호씨는 인천 장수동에 소재한 모 가구회사의 공무팀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가 맡은 일은 기계를 수리하거나 관리하는 일이었다.
사고가 난 그날도 그는 롤러기계가 고장이 났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출근을 해 수리를 하고 있었다. 한참 수리작업에 열중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멈춰있던 롤러기계가 작동을 했다. 함께 수리작업에 투입됐던 롤러기계의 담당자가 실수로 기계를 작동시킨 것이었다. 멈추라는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롤러의 틈으로 그의 오른손이 빨려 들어갔다.
김순호씨의 비명에 놀라 담당자가 황급히 기계를 멈췄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의 오른 손바닥 전부가 롤러 사이에 끼어있었다.
동료들에 의해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짓이겨진 손 그리고 엄청난 출혈을 본 의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의사는 오른손가락 전부를 절단해야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나는 운이 없는 사람”
하루아침에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됐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25살의 혈기왕성한 청년이 감당해내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손을 쓸 수 없는데 뭔들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김순호씨는 삶에 대한 의지를 힘없이 놓았다. 방황 속의 날들이 계속됐다. 육체와 정신적인 고통에 더해 경제적인 고통도 뒤따랐다.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가운데 재수술만 6번이 이어졌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그는 많이 달라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으며, ‘다시 살아보자’는 마음가짐도 갖게 됐다.
그는 작은 가구 공장을 하나 열었다. 다치기 전까지 가구 공장에서 일한 만큼 가구를 만드는 데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비록 왼손 하나로 가구를 만들었지만 그 품질만큼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었다. ‘손재주를 타고났다’는 주위의 호평 속에 공장은 조금씩 터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찾아왔던 행복은 이내 그를 떠나고 말았다. 공장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한 것. 힘겹게 세웠던 희망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마음가짐부터 바꿔라
2008년, 잠시나마 잠잠했던 오른손이 다시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은 채 다시 인천산재병원을 찾게 됐다. 결국 또 한 번 수술이 이어졌고, 재요양에 들어가게 됐다.
무료한 병원 생활을 답답해하던 차, 병원에서 운영 중인 특수재활요법을 알게 됐다. 원예, 도예, 금속공예 등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가장 그의 마음을 끈 것은 도예교실이었다. 하지만 오른손가락이 없는 자신의 상태를 알기에 그는 섣불리 도예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 도예교실의 정동화 교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정 교사는 “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며 그를 이끌었다. 정 교사의 따뜻한 가르침에 힘입어 그의 도예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했다. 도저히 왼손 하나로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작품들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져 나왔다. 가구를 만들던 손재주가 고스란히 살아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각종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하며, 유감없이 실력을 뽐내 나갔다.
이제 그의 얼굴에선 슬픔보다 웃음을 찾기가 더 쉬워졌다. 이에 대해 그는 “단지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바꿨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긍정의 힘 앞에 불가능이란 없다. 부디 아직 산재의 어둠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는 많은 산재근로자들에게도 이 긍정의 힘이 널리 퍼지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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