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 진 | 그림, 김주헌
제1부 탐욕의 성(性)
<21회>

숙경의 의도적인 유혹인가? 다시 벤츠는 서서히 움직였고 카 시디에서는 평소 숙경이 즐겨 듣는 고전음악 다뉴브 강의 물결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원 하셨습니까, 사장님!”
술기운 탓일까 준식이도 이제 제법 친숙한 농으로 그녀를 향해 말을 꺼냈다.
“또 사장이라네. 누님이라 부르래도.”
“아참 누님 죄송합니다.”
“응. 나 오늘 참 기분 좋네. 모처럼 사는 맛을 느끼겠어. 요 며칠간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무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숙경은 어느새 머리를 준식의 어깨 위에 갖다 기댄다. 그리고는 한손으로 준식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머리 결에서 장미향기 같은 고급 향수 냄새가 준식의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참 멋있어, 준식이. 내일 지구에 멸망이 와도 정원에 꽃나무랑 사과나무를 함께 심고 싶은 남자야.”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잘 이끌어 주세요, 누님.”
“나 말이야. 옛날 성격 같았음 지금의 남편과 재혼도 하지 않았어.”
“왜 그런가요? 의처증 때문인가요?”
“아, 아니 꼭 그런 것만 아니고, 우선 무식한 게 싫어. 처음 사귈 때는 자기가 미국의 무슨 대학을 수료 했다나 어쨌다나 거품을 물고, 학교이름도 생전 들어보지 못한 무슨 학교 이름을 대면서 턱하니 상패처럼 생긴 수료증이라는 패를 책상에 걸어 두고 사각 모자를 쓰고 미국 학생들과 찍은 사진을 큼직하게 확대해서 벽에 걸어 두고 과시를 하더라고. 처음엔 그저 그러려니 했지.
그런데 아니야. 돈 몇 백만 원 집어 주면 사고판다는 엉터리 졸업장... 정말 웃겨. 거기다 더 웃기는 건 말이야. 글쎄 미국에서 대학 나왔다는 사람이 프라이드와 프라이버시를 구별도 못하고. 학교 스쿨버스와 백화점 셔틀버스를 혼동하는가 하면, 동맹파업의 스트라이크와 권투 용어 스트레이트를 분별을 못하는 거야. 얼마나 웃기는지 몰라.”
“설마 그 정도로?”
“거짓말 같지? 난 어떨 땐 하도 기가 차서 하늘을 향해 혼자 웃고 말아. 한번은 옆집 여자와 함께 백화점 갔다가 택시가 없어서 조금 늦게 왔더니 글쎄 그 여자 앞에서 뭐라는지 알아? 그 놈의 백화점에는 스쿨버스도 한 대 없냐고, 목에 핏대를 올리는데 기가 차더라고. 난 무식한 인간은 혐오하거든. 정말 자존심 상해 죽겠어.
그런데 오늘 처음이었지만 준식이 문학 수준에 난 감탄했어. 특히 아까 저녁나절 방파제 위에서 들려준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란 칼 웰슨 베이커가 쓴 시 ‘렛 미 그로우 러블리’ 말이야. 그런 차원 높은 명시를 다 외우고 있으니! 정말 놀랐어. 난 이제 다 까먹었어. 내일 그 시문 하나 적어줘. 액자에 넣어 내 방에 하나 걸어두게.”
“예, 그러지요. 뭐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의 부군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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