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 진 | 그림, 김주헌
제1부 탐욕의 성(性) <32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준식의 이야기. 이것이 바로 장숙경 극본 장준식 연출로 된 본능을 해방시키고 싶었던 한 여성의 ‘위장강간’ 시나리오였다. 긴 시간에 걸친 준식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 방 사람들은 한편의 영화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고 야단이었다. 며칠 후 준식에게 한 통의 짤막한 편지가 배달되어 왔다.
- 준식이! 신의를 지켜줘서 고마워, 나는 비록 인간의 윤리와 도덕의 울타리를 벗어난 일탈의 행동을 했지만 준식을 만나 참으로 행복했다고 생각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죽는 날까지 영원히 내 가슴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 두고 싶어. 금명간 합의서는 넣을게. 아무 걱정마. 영치금 송금했으니 받아쓰고. 이만.
-숙경으로부터-
준식이가 숙경의 편지를 받은 그날 배식 반장 이하진이 봉사원에게 만약에 저 여자가 약속을 어기고 합의서를 넣지 않으면 준식씨는 징역을 얼마나 받을까요? 하고 물었다. 배식 반장의 질문을 받은 봉사원 유씨는
“글쎄. 그야 판사 마음에 달렸겠지만 다만 우리 법은 유전무죄고 무전유죄가 짙게 깔려 있는 현실이니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법전에는 강간죄인 경우 3년 이상의 유기 징역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긴 하지만...
기왕 법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가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함세. 유명 소설가 조정래 있지. 아리랑이니 태백산맥 등 장편 소설을 쓴 그 작가가 몇 년 전 한강이라는 우리 근대 역사 소설을 썼지. 서울대생 1천명이 뽑은 최고의 소설이고 우리 사회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다는 소설. 내가 우연히 그 한강이란 소설을 읽어본 일이 있는데 그 책 속에 보면 이런 대목이 실려 있어.
- 호랑말코 같은 새끼들이 구류 10일이면 될 걸 가지고 돈 없고 빽 없다고 지들 좆 꼴리는 대로 징역 6개월을 때려 버렸어. 개새끼들!!...
이라고 말이야.
이는 비록 소설의 한 대목의 줄거리이지만 감옥을 한번 와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다 느끼는 일이지. 유명 소설가가 쓴 이런 소설 대목이 바로 한국의 죄와 벌 숲속에 수없이 깔려 있는 가시돋힌 욕설이고 비난이다 이 말씀이야. 이 나라 법치자들이 그냥 흘려버릴 수만 없는 우리 법에 대한 불신을 향해 날아가는 저주에 찬 원성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그뿐인가? 중죄를 지은 놈도 ‘조건부 변호사’ 이를테면 전관예우 받을 ‘약효’ 가 있는 변호사 선임하며 3~4천만원만 던지면 대개가 다 풀려나간다 이 말이야. 우리 같은 놈은 돈 몇 백이 없어서 그 흔한 변호사 하나 못 사는 판국인데. 그 뿐인가 술 한잔 먹고 운전하다 걸려 벌금 일이백 못낸 벌금수들이 하루 3~4만원씩 벌금 까내려고 수없이 들어와 방이 터져 나갈 지경이고 안그래? 씨팔놈의 세상! 전쟁이나 쾅 터지든지 아니면 대지진이라도 한번 일어나 천지개벽이라도 되었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아“
이렇듯 수감자들의 푸념 속에는 참으로 날카로운 언어의 파편들이 수없이 난무하고 있었다. 한편 숙경은 남편이 혹시나 하고 의심을 품고 준식에 대한 합의 여부를 확인해볼까 싶어 위자료 문제가 끝날 때까지 취하서와 합의서 제출을 늦추고 있었다. 옥창 밖에는 철 늦은 장마비가 며칠째 추적추적 내리고 있던 그 며칠 후 또 한 통의 장문으로 된 등기 편지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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