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 진 | 그림, 김주헌
제2부 탐욕의 성(性) <2회>
그런데 ’89년 들어 정인숙 사건의 가해자로 알려진 그녀의 오빠 정종욱이 무기수로 20여년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안양교도소에서 가석방되어 나옴으로써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국의 ‘크리스틴 킬러’ 또는 ‘밤의 요화’라 불렸던 호스티스 정인숙이 처음 비밀 요정에 발을 디딘 것은 1965년 21살 때로 알려져 있다. 장 모 작가와의 동거 생활이 파탄이 나고 그녀는 ’65년이 되자 필동 3가 47번지 붉은 벽돌의 적산 집 에서 어머니와 단둘이서 살며 요정에 출입하기 시작한다.
정인숙의 성장기는 대체로 당시 부잣집 외동딸과 같은 범주에 넣어도 무방할 듯하다. 지금까지는 그 어머니의 병적일 정도의 편애 속에서 지나치게 오만하고 비뚤어진 성격, 또 오빠들의 꾸짖음과 손찌검 속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는 인숙(본명:금지)의 모습이 성장기의 그녀 모습 전체인양 치부되어 온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런 것은 그녀의 ‘결과’ 그리고 작가 장씨의 회고 덕분에 색칠해진 눈으로 바라본 모습이 아닐까.
한편, 1960년에 4.19가 일어나자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그 여파로 인숙의 삶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대구부시장이란 고위 관직에서 물러나고, 부정축재자 재산 몰수 대상자로 분류되어 가세가 급격히 기운다. 그녀는 이런 가정의 시련을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맞는다. 그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타격은 그녀에게 매우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대로 학교에 잘 다니다 ’63년에 대구신명여고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정인숙의 학창 시절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게 없다. 한 기자가 신명여고에 찾아가 당시 생활을 수소문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는 학적부에 접근하지 못했고, 62~64년 졸업생 명단에는 그녀의 본명인 ‘정금지’란 이름이 올라 있지도 않았다. 기자가 비공식적으로 알아본 결과 의외의 사실이 발견되었다. 졸업생 명단에는 그녀의 본명인 「금지」 대신 「정인숙」이란 이름이 올라 있더라는 것이다.
처음 정인숙은 서울에 올라와 안암동 오빠 집에서 지낸다. 그녀는 이화여대 시험을 치루었으나 낙방하였고, 문리사대에 입학한다. 그러나 가족들에겐 비밀로 한 채 학교에 입학금만 내고 다니지 않았고, 가짜 이화여대생 노릇을 하고 다녔다고 전해졌다.
대학생으로 위장했었지만 정인숙은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방황과 욕망과 사치를 하며 엉뚱한 꿈에 빠지고 만다. 부잣집 고명딸 생활에서 오빠에게 얹혀사는 신세로 전락, 꿈꿔왔던 명문대 낙방, 자신의 뛰어난 미모등 자신의 자존심과 좌절 그리고 허영 속에서 방황하며 그녀는 결국 영화배우가 되려는 결심을 한다.
학교는 더 이상 거들떠 보지도 않고, 매일 충무로 영화가를 기웃거린다. 그러나 그 스타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대신 한창 이름을 날리던 극작가 장씨를 만난다. 그것이 그녀의 운명을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간 것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청순하고 깨끗한 얼굴의 열아홉 예쁜 처녀 금지. 그러나 세상 순리를 모른 채 헛된 욕망으로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그녀는 장 작가와의 만남이 자신의 운명을 검은 손에게 맡기게 되는 첫 디딤돌이 될 줄은 모르고 있었다. 역시 여자는 첫 팬티를 잘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어려서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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