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 진 | 그림, 김주헌
제2부 탐욕의 성(性) <5회>
어머니는 처음에 인숙을 나무라다 마침내는 신세 한탄을 하였다.
“이기 무신 꼴이고? 우리 집이 와 이리됐노? 누가 이리 만들었노? 나쁜 놈들! 나쁜 놈들... 다 벼락을 맞아야 한데이... 지 애비 탓도 있다. 너무 융통성 없이 굴더니 이게 뭐꼬? 남들 다 재산 모을 때 뭐했노 이 말이다... 아이구, 그래 애비, 애미 잘못 만나 이리 된 기다. 다 부모가 못나 딸 하나 있는거 신세 망쳐 부렸다 이 일을 우찌하믄 좋노...”
하면서 어머니는 피눈물을 흘렸다. 순박한 가정주부요 대구에 살 때는 부시장 사모님으로 귀부인 대접을 받았던 그녀였기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 리 없고, 오로지 가족만 생각하고 살아온 여인이라 어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겠는가.
어머니는 끼니를 끊은 채 누워 버렸다. 어머니 방에서는 매일 인숙의 울음소리와 신경질적인 목소리 신세 한탄 들이 들려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운명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른 식구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지내는 동안, 인숙은 더욱 화려해졌고, 진한 화장에다 외출이 잦아졌다.

인숙이가 요정에 다니는 동안 나는 일본 파견 기술자 모집 공부를 계속했다. 마침내 시험 날짜가 왔고 자동차 부문 시험과 지능 적성 테스트도 받았다. 그러나 인숙이가 가지 말라고 하면서 함께 있으면 생활비를 대 주겠다고 하여 일본가는 문제를 포기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종욱의 인생을 백팔십도로 바꾸어 버릴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무렵 정종욱은 결혼은 했지만 실직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직장을 알아본다고 아내에게 얘기하고, 필동 엄마네 가서 빈둥대다 밤늦게 돌아오곤 했다. 그는 아버지의 체면과 형제들의 자존심 때문에 동생 인숙이가 비밀 요정에 나간다는 것을 아내에게 얘기할 수가 없었으며 아무리 아내였지만 동생이 그런 곳에 나간다는 것을 결코 밝히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요정에 택시를 타고 다니던 인숙이가 자가용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폭스바겐을 사들였다. 딱히 할 일이 마땅치 않던 오빠 종욱은 그때부터 동생의 운전사 노릇을 했다. 그 차는 59년형 하얀색 폭스바겐 스포츠카였는데, 당시 미8군에 부식을 납품하던 사장한테 샀다.
그 바람에 그는 인숙이가 틈틈이 주는 돈으로 아내에게 직장에서 받은 월급이라고 가져 다 주었다. 물론 엄연히 따지면 운전사 노릇하는 것이지만 차도 따지고 보면 우리 집 차고, 오누이 사이에 월급 내라 하기도 좀 껄끄럽기도 했던 것 같다.
인숙이도 오빠인 그의 마음을 알았던지 돈이 생기는 형편대로 잘 집어주었다. 기분이 좋을 때면 수시로 “오빠, 돈 떨어지지 않았나? 자 옷 사 입고, 언니 외식도 좀 시켜 주라”하는 식으로 현찰로도 수표로도 그때그때 주었다. 무슨 팁이라도 두둑이 생기면 그런 일은 더 많아졌다. 그는 그 돈으로 충분히 생활 할 수 있었다. 당시 쌀 한 가마가 5, 6천원 정도였으니 두세 식구 사는 것은 걱정이 없었다. 동생과 그의 이런 관계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아내는 꼬치꼬치 묻지도 않았고, 서로가 늘 바빴기에 그런 대로 직장에서 받는 월급인 줄 알았고, 동생의 비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내는 매일 밤늦게까지 미장원 일을 했고, 그 또한 필동에서 밤늦게 돌아오지 않으면 자고 올 때도 많았다. 나중에 인숙이가 서교동으로 이사를 가고, 그들 부부가 그 집에 들어가 1년 정도 같이 생활할 때까지 그는 계속 이런 생활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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