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안전의 패러독스
절대안전의 패러독스
  • 승인 2014.10.22
  • 호수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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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 고용노동부 성남고용노동지청장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불상사가 발생한 기업이나 정부의 간부로부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여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여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라는 유감표명이나 사과를 듣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 필자는 “이렇게 말하는 기업조직에서 위기관리가 과연 가능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곤 한다.

사회에 위험성은 상존한다. 기업은 안전한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결함제품이 제로로 될 수는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위기관리는 위험성을 전혀 없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서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라는 주술에 속박당하면 일종의 사고(思考)정지 상태에 빠진다. 그러면 냉정하게 위험성을 분석하거나 사고에 직면했을 때 대처방법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발상은 나오기 어렵다. 즉 위기관리능력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전형적인 예가 세월호 침몰사고다. 이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대부분 화재사고를 상정한 피난훈련을 실시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실시했다. 왜냐하면 사고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위험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사고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효성 있는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것일까? 먼저 위험성을 단순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론의 영역으로 억지로 밀어 넣지 않는 것이 대전제다. 아울러 위험성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크기를 사전에 판단하는 것, 그리고 평가된 위험성의 크기에 따라 이것을 최소화하는 예방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나아가 만일을 상정한 행동규범을 사전에 만들어 놓는 것, 이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기계ㆍ설비안전에 관한 국제기준의 근저에 있는 안전이론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안전대책을 취한 후에도 위험성이 남는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찰과상으로 끝나는 정도의 위험성이면 남아 있더라도 허용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제기준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절대안전의 세계가 아니다. 또 원칙과 명분의 세계도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안전을 실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수용 가능한 위험성이라 하더라도 위험성이 남아 있는 제품을 판매할 수는 없다’,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제품은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등의 의견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고,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대안전의 세계에 있는 빠져 있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제품에 위험성이 남아 있는 것은 기술의 한계에 기인한다. 연필 한 자루조차 위험성을 제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날카로운 연필은 사용방법에 따라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위험성이 전혀 없을 수는 없기 때문에 경미한 사고일지언정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는 것이다. 절대안전을 주장하다 보면 스스로의 논리에 파탄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사고를 은폐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작은 사고는 큰 사고의 전조이다. 실제로 발생한 사고를 숨기게 되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할 기회를 잃게 된다. 절대안전의 주장이 오히려 큰 사고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로 연결된다.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는 한, 아니 위험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한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을 전제로 사고를 상정한 대책, 긴급대응ㆍ피난훈련 등 안전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만일 ‘사고를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원칙에 지배되어 긴급대응ㆍ피난훈련 등 필요한 안전대책이 취해지지 않고, 피해를 크게 키우게 될 수 있다. 긴급대응ㆍ피난훈련 등도 중요한 위험성 관리의 하나이다.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한 후에 안전대책을 강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안전의 실현을 향한 제일보(第一步)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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