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 진 | 그림, 김주헌
제2부 탐욕의 성(性)
<8회>
우리는 4월 10일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지난번 미국 여행에서 인숙은 워싱톤에 아파트를 구입해 놓고 다음 달인 4월에 우리는 아예 들어가 살기로 결정을 하였다.
물론 그런 결정은 성일이 아버지의 요청에서 비롯됐다. 인숙이는 미국에 다녀온 후 그곳에선 불편한 점도 많고 외롭다며 성일이, 나와 내 아내 고영숙, 그리고 우리가 데리고 있던 가정부 아이, 이렇게 모두 다섯 명이 모두 함께 미국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보았다. 그러니 송별회 파티라면 나도 들어가도 될 듯싶었다.
라디오를 틀었다. 경음악이 차 안을 흘렀다. 차는 신촌 로타리를 거쳐 서울역을 거쳐 퇴계로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누가 파티 열어 주는 기고? 성일이 아버지가?”
“……”

성일이 아버지는 아닌 모양이다. 성일이 아버지의 전화는 없었다. 그럼 오늘은 누굴까?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성일이 아버지가 다녀갔다. 전화가 없었으니 갑자기 들이닥칠 리도 만무하다. 그러면 동생은 마음 놓고 외출을 할 수 있었다. 난 이해하려 애썼다.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잔뜩 짜증이 나 있다가 누군가가 불러내어 바깥바람을 쐬게 되어 저렇게 즐거웠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술 많이 먹지 마레이. 실수 안 하도록 하고… 성일이 아버지 생각도 해야 안 하것나. 니는 이제 멋대로 그렇게 막 휘두를 몸이 아니지 않나? 조심해라…”
“알았다. 신경 쓰지 말아라. 내 다 알아서 할 끼다. 오빠가 그런데 신경 안 써도 된데이. 운전이나 조심해서 해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이 그런 말을 할 때 자꾸 얘기 더 늘어놓아 봤자, 그 애는 신경질이나 부리기 일쑤란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퇴계로를 지나 장충동 쪽으로 꺾어 장충체육관을 지났다. 인숙이는 여전히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타워 호텔에 도착한건 8시 10분경이었다.
호텔 정문에 차를 세웠다. 인숙이는 내리면서 손가락에서 다이아 반지를 뺐다.
“오빠. 이것 좀 가지고 있으라. 춤출 때 반지 끼고 있으믄 옷에 걸려 상처난데이. 이래 뵈도 실크 고급 옷인데 상처 나면 어떡하노. 그리구 오빠, 내 오늘 혹시 늦을지도 모른데이.” 인숙이 특유의 애교 섞인 말투였다.
“알았다. 아무 걱정하지 말구, 잘 놀다오너라.”
인숙이는 미끄러지듯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차를 주차장에 대놓고 히터를 계속 틀어 놓았다. 밖의 날씨가 제법 추웠기 때문이다. 늦을지도 모른다 했으니 마음을 느긋하게 먹었다. 인숙이는 저 안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을까?. 동생도 내가 성일이 아버지 외에 딴 남자 만나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타워 호텔 17층 나이트클럽. 클럽 안은 느린 음악이 낮게 흐르고 있었다. 창밖의 서울의 냉랭한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자꾸 문 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깨끗하고 잘생긴 얼굴, 건장한 어깨, 정장 차림이었지만 목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한눈에 여유 있는 멋쟁이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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