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모의 세상보기(61)
애국자 한규설(韓圭卨) 대감과 매국노 이완용(李完用) 올바른 인간의 ‘의리’와 야비한 ‘배신자’의 말로는 무엇이 다른가? 나는 평소 역사소설을 참 즐겨 읽는다. 그러다 보면 우리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사람과 배신자(背信者)의 비참한 말로(末路)를 자주 접하게 된다.
오늘은 그런 역사 스토리 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참으로 놀라운 대목 한 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약 100여년 전, 그러니까 구한말 고종황제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역사에 큰 획이 되었던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일명:을사늑약)때 임금 바로 밑에는 대신(大臣) 7명이 있었는데 그때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대감은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였다.
그런데 그 직속 산하 이완용 등 5명의 대신들이 공모 결탁하여 일본의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와 밀착. 그 을사조약을 통과시켜 버리려 했다. 그때 한규설 대감께서 하신 발언 한마디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나는 내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굴욕적인 조약을 반대한다”라고 단호하게 호통을 쳤다. 그 사실을 보고받은 고종황제 임금께서는 “과연 한 대감이 만고 충신이로다”하며 눈물(옥루)을 흘렸다고 비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매국노 이완용 등은 여우웃음을 흘리며 한 대감을 이런 기회에 몰아내야 자기들이 살아난다며 연판장을 만들어 고종황제에게 상소하였다. 그 상소를 받은 임금은 “절대로 한 대감을 유배 보낼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공로가 지대한 대감에게 포상은 못할망정 유배라니...하고 격노했다.
그러자 이완용 등 매국노들은 또다시 이등박문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한 대감을 모략, 강제 추방을 시킨 것이고 즉시 이완용은 참정대신 이름을 ‘총리대신’이라 고쳐 만들어 감투를 쓴다. 그때부터 ‘친일 사냥개’가 되었고 일본놈들에게 아첨을 하여 나라를 팔아먹는다. 그때 한 ‘꽃뱀’ 같은 여인이 등장한다.
바로 이등박문의 수양딸이 되어 천하를 주름잡던 ‘요화, 배정자’가 그 주인공인데 그녀는 을사늑약 얼마 전 어느 달 밝은 날 저녁 참정대신 한규설 대감 처소를 찾아갔다.
큰 돈과 값비싼 선물(뇌물)을 지참하고, 이른바 ‘미인계’를 쓰고, 대감을 유혹하려 했다. 즉 한일보호조약에 찬성만 해 주면 내 모든 걸 바치겠노라고. 그러나 한 대감은 일언지하로 거절하고 “이 나라가 어떤 나란데 요망한 계집이 감히 나를 찾아와 능욕하려 드는가. 여봐라! 이 사악한 계집을 당장 끌어 내어라!!”하며 쫓아 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신중히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고결한 선비정신인가?...조국의 앞날을 걱정한 만고의 충정이 아닌가! 그러나 배정자는 그에 앙심을 품고 양아버지 이등박문에게 가서 온갖 모함을 다 한다. 그래서 결국 한 대감은 퇴출되고 친일세력들은 모두 득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때 한 대감은 고향으로 내려가 야인(野人)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등박문은 유능한 한 대감에게 ‘남작’이란 명예직 벼슬감투로 한 대감을 달래고 현혹했으나 대감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대선비인 이상재 선생과 의기투합, 국민계몽운동(민립대학 설립)을 했다.
그리고는 전 재산을 팔아 이 나라 여성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자손들에게도 바른 교육만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노니 꼭 실천토록 하라시며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결과가 100년 뒤 오늘날 87년의 찬연한 역사의 탑을 쌓아올린 현 「서울여상」이 된 것이다.
한편 그런 애국지사 한 대감을 강제로 몰아낸 배신자들과 친일 매국노들은 해방 후 전부 독립운동가들 손에 맞아 죽거나 외국으로 도망갔다. 물론 요화 배정자도 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당한 것이다. 자, 이 역사스토리를 우리는 신중히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좋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사악한 인간도 한 순간 행복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악(惡)의 열매’가 다 영글기 전에 일이고 선량한 사람도 가끔은 불행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善)의 열매’가 다 영글기 전의 일이다”
아! 이 얼마나 사람의 가슴을 두드리는 명언인가? 우리 모두 의리(義理)와 신의(信義)를 지키며 정의로운 길을 걷고 살아가도록 했으면 참 좋겠다.
<작가, 본지 자문위원>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