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 듯 한 성추행. 그것도 권력께나 휘두른 소위 고관대작(高官大爵)들과 사회지도층들의 성추행 행태가 늘어나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이시각도 신모 전직 검찰총장이란 사람이 그런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또 현직 경찰 간부도 여성을 차속에서 추행하는 등 세상이 시끄럽고 야단법석이다. 그뿐인가. 군대 사단장과 대학교수에다 인권위 간부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에도 검찰 고위직을 지내고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까지 지낸 박모 씨가 듣기에도 창피하고 부끄럽고 그 부인과 자손들이 듣고 가슴을 두드렸을 성추행 범죄 행위로 경찰서에 가서 새벽조사를 받고 기자들을 피해 도망치듯 빠져 나갔다는 뉴스를 접한 국민들의 심정은 벌레 씹은 기분이었고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다 늙어가는 사람들이 왜 그런 개망신을 자초하여 평생토록 쌓아올린 인격과 명예를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처럼 만드는가?
일부에서는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넓은 마음으로 한번쯤 봐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글쎄다.
어떤 의학전문기자는 이런 성추행 범죄자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낙인을 찍었다. 사이코패스란? 상대방의 고통과 분노, 수치심에 대한 어떤 배려나 생각도 없이 자기 맘대로 행동을 하고 X뀌고 성내듯 오히려 “내가 뭐 잘못했느냐”고 반항하는 그런 덜된 인간들을 말한다.
어떤 자들은 경찰, 검찰에 가서 성추행 피의자 조사 때 “내가 잠시 그 여자가 귀여워 껴안기는 했지만 추행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해 조사관들을 실소케 한단다. 그럼 성추행의 한계와 개념은 무엇이며 어디까지인가? 답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누가 만일 그런 돈 많고 빽 좋은 자들의 부인이나 딸을 덥석 껴안거나 얼굴에 뽀뽀를 했다면 어찌될까? 당장 이놈을 잡아가두라고 펄펄뛰고 경찰이나 검찰에 먼저 전화할 인간들이다.
그런 자들이 사회통념적인 상식선도 모르고 그런 추한 짓을 했다니 세상 참 더럽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 그렇다면 그런 문제에 비난과 원망만 하기보다는 특유의 예방교육이 필요할 것 같아 필자가 한 가지 공개 제언을 하고 싶다. 그 옛날 고려명장 최영 장군의 유명한 말씀.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며 돈에 눈이 뒤집혀 날뛰는 인간들을 향해 던진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성추행 예방을 위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성을 보기를 지뢰같이 하라”틀리는 말일까? 지뢰는 가만두고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터지지 않고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밟거나 잘못 건드리면 폭발한다. 그렇듯 잠재된 여성의 자기보호 본능이 바로 밟으면 터지는 지뢰를 닮아 있다고 보면 된다. 여성을 노리개로 착각하지 말고 여성의 인격을 존중해 주자는 뜻이다. 틀린 말일까?...
또한 장난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는 다리가 찢어지기도 하고 머리가 터져 죽을 수도 있다. 남성들, 특히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이여! 제발 장난삼아 돌을 던지지 마라. 그 돌에 개구리는 피를 흘린다. 지뢰를 밟지 마라. 언제 터질지 모른다. 나는 최근에 ‘불의 성’이란 산문집 책을 한권 펴내었는데 그 책속에다 이런 조금은 엉뚱한 글귀를 담아내었다.
“이 세상 남성들이여! 자기 아내 히프는 이조백자처럼 보고 남의 여인들 히프는 된장단지처럼 보라!” 그러면 성추행 성폭행은 사라지리라...고. 어쨌거나 우리사회에 성추행이니 성폭행이란 말이 사라져야 여성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겠는가. 전직 청와대 대변인 윤 모씨가 그 막강한 위치에서 하루아침에 ‘노숙자’ 신세가 된 것도 여성의 몸을 ‘지뢰’로 보지 않고 피아노 ‘건반’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 본지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