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 진 | 그림, 김주헌
제2부 탐욕의 성(性) <10회>
지루했다. 이렇게 기다리는 데 이력이 나 있었지만 은근히 짜증이 났다. 벌써 10시 4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주차장 마이크에서 나를 찾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서울 2자 262호, 정문에 차 대세요.’
나는 얼른 정문으로 다가갔다. 인숙이 나오고 있었다. 호텔의 문지기가 차 뒷문을 열었다.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불그레했다. 들어갈 때 유쾌하던 얼굴도 웬지 굳어 있었다. 차에 탄 동생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난 천천히 엑셀을 밟았다.
“늦었구나. 집에 어서 가야지.”
“그래요…에이, 빨리 미국에나 들어갔으면 좋겠어”
정문을 막 빠져나가는데, 뒷거울에 웬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인숙이와 만났던 남자구나 하는 직감이 스쳤다. 그의 앞에 짙은 밤색 크라운이 멎었다. 그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뒷거울로 본 인숙이는 여전히 침울해 있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었나 싶었다. 사실 동생은 그런 직업 아닌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술은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나도 똑같은데 기껏해야 칵테일 한두 잔 먹는 정도였다.
우리는 둘 다 칵테일 페퍼민트를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은 동생의 얼굴이 꽤 상기되어 있었고, 취한 얼굴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동생은 ‘오빠, 고생 많았다. 이 추운데’ 라고 미안한 마음이 담긴 말을 던지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묵묵부답이었다. 분위기가 좀 어색한 듯해 먼저 말을 걸었다.
“파티는 즐거웠나?…… 와 그러노? 기분이 안 좋나?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아이, 그냥…… 새끼들…… 남자들은 다 그런 것들이야.”
인숙이는 낮은 목소리로 푸념을 내뱉었다.

‘누굴 만났길래 저러노? 저렇게 침울해 하는 걸 보면 또 무슨 일이 생겼다카이. 집에서 조용히 성일이나 데리구 놀구 있으믄 괜찮지 않나…… 쯧쯧. 근데 누굴 만났길래… 성일이 아버지 비서를 만났나? 미국 가는 문제도 있고, 성일이 문제도 아직 해결이 안 된 모양인가 분데……’
의문은 계속 솟았다. 나는 성일이 아버지의 본처가 인숙이 애 낳은 걸 알아 본가에 어떤 마찰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여파가 동생에게까지 미치고 성일이 문제 등이 자기 바람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차를 몰았다.
시내는 시간이 늦어 차가 드물었다. 그러나 평소의 속도대로 차를 몰았다. 나는 항상 40~50km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그것은 인숙이가 겁이 많아 차를 빨리 달리면 질색하기 때문이었다. 장충체육관을 지나 퇴계로를 들어서 대한극장 앞을 지나 충무로,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앞을 지나 시청 쪽으로 차를 몰았다. 시청 광장은 찬바람만 머물고 있었다. 중앙일보사, 신촌 로터리, 동교동 로터리를 지나 집으로 향했다. 집 근방에 다다랐다. 아마 그때 시각이 11시 40분쯤 되었을 것이다.
서교의원 골목을 돌아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아스팔트가 되어 있지 않아 나는 언제나 속도를 줄였다. 골목으로 뻗은 전조등 불빛에 두 사람이 드러났다. 동생 집 옆으로 웬 두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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