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3분에 1,000억 원을 버는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평가한다. 아이팟이 2,200만 대나 팔리는 동안 그는 세 차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판매 총액을 프레젠테이션 시간으로 나누면 3분에 약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번 셈이다.
잡스는 수천 명의 관중을 몇 시간씩이나 매료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미국 대통령보다 능란하게‘이 자리에 오길 잘했다, 앞으로 멋진 일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들고 흥분시킨다. 미국 대통령도 연설할 때는 가끔씩 전문가가 작성해 준 원고를 훔쳐본다. 그러나 잡스는 원고가 없다. 시선은 늘 청중을 향한다. 때로는 두 손을 벌리고, 때로는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마주잡고 제품과 기술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한다. 그렇다. 잡스는 제품을 말하는 것이다. 비전을 신념으로 포장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점이 다른 사장이나 정치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잡스를 보고 있으면 메시지란 단지 알기 쉽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열의와 감동을 담아서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그의 마술 같은 화법에는 몇 가지 비밀이 있다.
① 상대를 안달하게 만든다
상대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살짝 보여주거나 감추어서 안달하게 만든다. 마치 화술의 스트립쇼 같다. 청중은 자기도 모르게 좀 더 듣고 싶어서 몸을 앞으로 바짝 내민다.
②기복있는말투
무미건조한 말투는 피한다. 오케스트라처럼 때로는 속삭이듯 조용하게, 때로는 소리치듯 강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마술사처럼 관중의 반응을 봐가면서 재빨리 비장의 카드를 골라서 내놓는다. 일찍이 명배우 헨리 폰다는 레스토랑 메뉴를 조용히 읽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감동시켰다는 전설이 있는데, 잡스도 이야기 내용 이상으로 말투가 멋지다.
③ 완벽한 조명
잡스는 프레젠테이션 리허설에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원고는 일단 준비하지만 프레젠테이션하는 동안에는 쳐다보지 않는다. 제품은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 있고,‘ 애플 신자’들이 눈을 빛낼 만한 포인트도 정확히 알고 있다. 이야기 전개는 청중의 반응에 따라 직감으로 바꾼다. 시간을 내는 것은 무대 관리자와‘제품을 어떻게 보여줄까’‘시연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상의할 때뿐이고, 그러기 위해서 완벽한 조명을 활용한다.
잡스의‘완급’vs 보통 사람의‘성급’
픽사가 제작한 양철 장난감과 아기를 그린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영화 <틴 토이>가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상을 받는다. 이로써 기술력과 예술성의 평가가 급격히 높아졌다. 하지만 경영 면에서는 여전히 힘들었다. 이때 픽사에 막대한 자금을 출자해서 멤버 모두가 꿈꾸던 장편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디즈니다. 제안은 픽사 쪽에서 먼저 했다. 디즈니의 장편영화 책임자인 제프리 카첸버그는 존 래스터의 재능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래스터는 디즈니에서 일했다. 실제로 카첸버그는 래스터에게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 재량권을 줄 테니 디즈니로 돌아오라고 권유한 일도 있다. 하지만 래스터는 디즈니의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한다.“ 디즈니에서도 영화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픽사에서는 역사를 만들 수 있다.”픽사는 디즈니의 자금으로 크리스마스용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과감한 제안을 내놓았다. 사내에서 검토한 결과, 디즈니는 ’픽사가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고 디즈니는 자금을 제공한다“는 답을 냈다. 게다가 ”홍보와 배급 모두 디즈니가 한다“는 꿈 같은 회답까지 덧붙였다. 넥스트와 픽사라는 두 적자 회사를 떠안고 곤경의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던 스티브 잡스에게 이것은 하늘로 뛰어오를 만큼 기쁜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디즈니에는 미키마우스 이후‘전면 외주는 주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제작을 모두 픽사에 일임하는 전면 외주였다. 디즈니 재정비에 착수한 야심가 카첸버그는 전통을 깨뜨려서라도 래스터의 재능에 도박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카첸버그의 오른팔이라는 피터 슈나이더까지 전통을 방패삼아 픽사와 일하는 것에 반대했다. 속마음은‘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고 주위에게 믿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다. 협상이 취소되는 건 아닌지 모두가 걱정하기 시작할 무렵, 잡스는 한 가지 수를 냈다. 다른 영화사와 접촉하는 모습을 흘린 것이다. 유력한 몇몇 회사의 중역들과 이쪽 업계 사람들이 자주 가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픽사의 잡스가 디즈니가 아닌 다른 영화사의 중역과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 정보가 디즈니 쪽에 전해지는 것이다. “디즈니와 일하고 싶다면 디즈니 이외의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마라”고 늘 말했던 자존심 센 카첸버그에서 연락이 왔다. 잡스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상대의 거만한 성격을 이용해서 보란 듯이 다른 영화사의 중역을 만난 잡스의 작전이 먹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