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안에 어르신 한 분이 119구조대에 관심이 많다. 어르신은 등산을 갔다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져 다리를 다쳐 119에 구조를 요청했고, 구조헬기가 날아와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119구조대에 늘 고마워하시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119 구조대에 대한 자랑도 가끔 하시고 있다.
119는 화재뿐만 아니라 구조, 구급 분야에서 시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구조요청이 있을 때 상황에 따라 헬기가 출동한다. 산악사고 출동이 대부분이지만 교통사고, 풍수해 등 재해현장에도 출동한다.
헬기에는 응급구조사자격을 가진 구조대원이 동승, 가까운 곳의 병원까지 직접 후송하거나 학교 운동장 등에 먼저 착륙한 후 구급차로 하여금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토록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병원에서 위급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 때에는 의사가 탑승하지만, 재난 및 사고현장으로 출동할 때에는 헬기에 의사가 동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은 전문적 처치가 필요한 응급환자가 생기면 의사들이 바로 헬기를 타고 재난현장으로 날아간다. 2001년부터 시행한 ‘닥터 헬리(heli)’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닥터 헬리’ 출동은 대개 119를 통해 이뤄진다. 응급환자 발생 신고가 접수되면 구조대원이 먼저 앰뷸런스로 현장에 달려가고, 환자가 중증이다 싶으면 즉시 전문의를 태운 헬기가 현장으로 날아간다. 앰뷸런스가 환자를 가장 가까운 헬기 착륙장으로 옮겨 오면 ‘닥터 헬리’ 의료진이 즉각적인 처치를 한 후 병원으로 싣고 날아가는 체계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조종사, 기술요원 등이 한 팀을 이루고 있으며,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를 위해 365일 교대로 대기한다.
헬기 이송 중에는 탑승한 전문의들이 필요에 따라 심폐소생술, 인공호흡장치 삽입, 심정지 상태를 일깨우는 전기 충격, 과다 출혈에 따른 수액 치료 등의 조치를 하며, 그 사이 병원에서는 외과·흉부외과·내과 등의 의료진을 대기시켜 환자가 도착하는 즉시 전문적 처치가 이어지도록 한다.
일본 전역의 2009년 헬기 이송 건수는 7,167건으로, 하루 평균 20건이다. 일본을 22개 권역으로 나눠서 각 지역의 대표적 종합병원이 ‘닥터 헬리’를 가동하고 있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반반씩 부담을 하고 있다.
또 헬기 출동을 위해 병원 주변 50㎞ 안에 착륙장을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다. 학교운동장, 옥외주차장, 대형도로 등 1000여개의 착륙장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 ‘닥터 헬리’로 인해 일본의 구조.구급 분야에서는 큰 효과를 봤다. 이 체계를 비롯한 의료시스템 개선 덕에 사고 발생 후 24시간 안에 사망한 외상환자가 절반 이상 줄었다고한다. 지난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에서 3도 화상을 입은 유일한 일본인 생존자 카사하라씨도 ‘닥터 헬리’를 타고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국립의료센터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일본의 ‘닥터 헬리’에 대한 설명을 나열한 것은 우리나라도 이의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가 상당히 심각하다. 세계 1위를 다툴 정도로 교통사고가 많다. 또 심근경색증이나 뇌졸중으로 인한 위급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로 앰뷸런스 호출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의들이 포함된 ‘닥터 헬리’를 도입하게 된다면 도로 위와 가정에서 죽어가는 많은 환자들을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산악사고를 당한 위급 환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국토가 좁아 운영상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을 분담하여 시범적으로 운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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