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미국의 대중국 견제 위한 군사전략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중국 중심 금융시장 재편의 신호탄 조선시대 광해군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면서, 후금으로부터의 안전도 보장받는 실리외교를 펼쳤다. 대표적인 외교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광해군의 정책을 보고 배워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당시처럼 지금 한국은 외교적 난관에 봉착했다.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설립을 앞두고 창립멤버로 한국이 동참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고, 미국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보면 경제적 이익과 국방을 위해 모두 필요한 일인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잡한 외교적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 당국이 조선시대 광해군처럼 실리와 안보 모두를 챙기는 전략적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美패권에 도전하는 신흥강자 중국
AIIB는 지난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설립을 제안하고 추진 중인 프로젝트다. 금융시장이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막기 위한 조치다. WB에는 미국이, ADB에는 미국과 일본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어, 중국의 발언권이 제한적이다. G2로 급부상한 중국으로서는 새로운 금융기구 창설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
이에 중국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차근차근 준비해오고 있다. 지난해 7월 브라질 포르탈레자에서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 브라질, 중국 등 브릭스(BRICS)의 정상들이 중국 주도의 신개발은행(NDB)을 설립하는 것에 합의했다. NDB의 목표는 명목상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지원이지만 사실상 미국 중심의 금융시장을 재편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즉 WB와 ADB에 대한 대항마로 각각 NDB와 AIIB를 설립하는 것이다. 결국 이번 AIIB는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시장을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초석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에 AIIB 설립 동참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보다 중국의 편에 서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우리로서는 경제적인 영향관계에 있는 중국과의 실리를 추구하면서, 군사전략적 동맹관계인 미국과의 이해에 금이 가지 않을 최선의 선택을 해야할 시점인 것이다.
◇中견제에 들어가는 미국
중국이 AIIB 창립멤버로 동참을 요구하면서 우리를 당혹케 했다면 미국은 THAAD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우리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탄도미사일로부터 동맹국인 한국과 주한미군, 그리고 주변국을 방어하기 위한 배치라는 설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세계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레이더를 이용한 감시나 요격미사일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국제정치 싸움의 일환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THAAD의 X밴더 레이더의 최대 탐지거리가 2000km로 중국 본토 대부분이 커버가능하고,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요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당수 군사전문가들은 중국 동부에서 쏘아올리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한반도에 배치된 THAAD로 요격할 수 있는 고도를 벗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형의 영향을 크게 받는 레이더는 인공위성보다도 감시기능이 떨어져 THAAD의 한반도 배치는 중국의 군사력 견제에 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THAAD 배치를 놓고 양국이 첨예하게 갈등을 벌이는 것은 국제정치와 군사전략이 혼합된 싸움이라는 것이다. 이는 Anti-access, 즉 상대전력이 본토에 근접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조치다. 미국의 러셀 차관보와 중국의 류젠차오 부장조리(차관보급)가 거의 동시에 방한해 THAAD 배치를 놓고 서로의 입장을 주장한 것은 이런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외교 시험대에 오른 한국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 속에 우리 정부의 입장은 매우 곤란해졌다. THAAD와 관련해서 중국 눈치를, AIIB가입과 관련해 미국 눈치를 보는 듯 한 정부의 모습을 놓고, 야당 대표는 “주권국가로서 부끄럽게 만든다”고 일침을 놨다. 국민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 전통적인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에서 군사안보적인 실리를 차리는 동시에 신흥강자로 떠오른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이익도 챙기려면, 보다 세련되고 정제된 정부의 외교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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