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채우는 인문학 샘터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을 다녀오면, 대도시의 삶이야말로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붐비는 인파에 치이고 빽빽한 아파트에 시야를 가로막히다 내려오면 지방에 살게 되어 행복하다는 심정까지 든다. 서울을 가득 채운 아파트가 강제하는 비인간화에 생각이 미치면 그러한 느낌, 심정이 한층 더해진다.
아파트는 현재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주거 형식이다. 2010년 기준 전국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59%이고, 광주와 대전, 울산 등지는 70%를 상회하고 있다. 아파트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음을 고려하면, 2015년 현재는 전국적으로 70%를 훌쩍 넘기리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아파트가 이렇게 늘어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용적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고, 전기나 가스, 상하수도 등 주거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경제성이 무엇보다 큰 요인이 된다. 개개인의 심리 면에서 보자면, 도시의 중산층으로 산다는 만족감을 갖게 한다는 점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항이다. ‘하우스 푸어’가 회자되는 현상이야말로 번듯한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심리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를 잘 알려 준다.
거주 공간으로서 아파트가 갖는 기본적인 장점 또한 빼놓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아파트 생활은 신속성과 편의성을 보장해 준다. 근린생활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가사노동을 포함한 일상생활을 편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점은 1936년의 한 신문기사에서 이미 ‘간이(簡易)와 스피드를 생명으로 하는 아파트’ 운운했던 데서도 확인된다. 아파트 내에 놀이터와 경로당은 물론이요 운동 공간까지도 마련되어 있고, 주차 문제로부터도 자유롭게 된다는 점에서, 아파트야말로 일반 시민들의 이상적인 주거 형식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이나 편리함에 현혹되어 아파트가 강제하는 문제들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획일성이다. 거의 대부분의 아파트가 외형이 동일한 것은 물론이요 내부의 구조까지 한결같아서, 침대나 냉장고, 텔레비전, 소파 등 대부분의 가정이 구비하게 마련인 가재도구들 또한 거의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가재도구의 위치가 사실상 정해져 있는 셈인데, 이것이 문제적인 것은, 그 결과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동선(動線) 또한 획일화되어 생활의 패턴 혹은 리듬에 있어서 개성적일 여지가 심각하게 축소되는 까닭이다. 이렇게 거주자가 자신만의 생활을 윤색할 여지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파트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단일화, 동질화하며 개성을 용인하지 않는 주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 거주자들의 삶의 패턴이 동질적으로 된다고 해서 그들 간에 공동체적인 유대가 생기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한다. 구조적으로 볼 때 아파트 속의 개별 가구들은 서로서로 고립된 섬이다. 현관문 하나만 잠그면 각각의 아파트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절연된다. 삶의 형태를 동질화하는 방식으로 개인을 없애면서 동시에 서로를 소외시키는, 이러한 기막힌 메커니즘이 바로 아파트의 구조에서 성취된다.
더 나아가 아파트는 가족 구성원들까지도 분리시킨다. 아파트 내의 방문들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복도를 맞대면하기까지 한다. 아파트의 거실은 벽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문을 달고 있지 않다. 모든 방문들이 대청마루나 봉당을 향하고 있는 전통가옥은 아니더라도, 현관 마루를 가운데로 하여 방과 주방 등이 둥그렇게 돌려지게 마련인 대부분의 주택 구조와 비교해 볼 때, 이는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아파트의 이런 구조 자체가 가족 구성원의 접촉을 줄일 수밖에 없음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이렇게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들을 떼어놓는 주거 공간이다. 거주자들의 삶의 패턴을 획일화시키되 그들 사이의 소통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주거 형식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키는 ‘가변형 아파트’도 도입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절대다수의 아파트는 사람들을 획일화하면서 소외시키는 부정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아파트가 주는 편의성은 유지하면서 거기서 생기는 문제는 완화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삶의 공동체가 가졌던 특성들을 우리 시대에 맞게 도입하는 것이다. 교육과 여가의 면에서 공동 활동을 활성화해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아이들의 방과 후 교육을 각자 학원에 보내는 방식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 공동으로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필요한 선생님을 초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 간의 소통이 활발해지면 공동 여가 활동이나 공동 육아 등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의 소통과 협동도 가능해질 터이다. 이러한 ‘생활 공동체 활동’이야말로 아파트가 강제하는 획일화 및 소외 현상을 극복하는 의미 있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식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정의 생활 방식이 획일화되고, 우리가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개성이 위협받으며, 사회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공동체적인 특성이 쉽게 위축되는 것이, 아파트라는 주거 형식에 크게 기인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도시생활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건축에 공동체적인 요소를 도입하자고 했던 버트란드 러셀의 주장(게으름에 대한 찬양) 또한 새삼 눈여겨볼 만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