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태를 두고 무엇을 물을 것인가
세월호 사태를 두고 무엇을 물을 것인가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5.04.15
  • 호수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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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문학평론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마음을 채우는 인문학 샘터

2015년 4월의 봄은 실로 잔인하다. 뒤집힌 배에 갇힌 사람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텔레비전을 보며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작년 봄 이래로, 어느 때고 마음이 편치 못했다. 지난 가을 팽목항을 다녀왔어도, ‘REMEMBER 20140416’이라 쓰인 노란 고무 팔찌로 내 손목을 반년 가까이 옭아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월호 소식을 공유하며 작은 힘이라도 되고자 해 왔어도, 마음의 짐과 편치 못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안타까움과 분노가 커질 뿐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무능과 뻔뻔함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 준 행정 관료들이며, 유가족들을 죄인처럼 몰고 간 정치 모리배들과 언론 권력의 온갖 악의 언행들이 그렇게 만들어 왔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잡아먹은 특별법의 제정이나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과 관련해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보인 행태는 물론이요, 실권이라고는 부여받지 못한 위원회의 조사활동조차 사실상 허울뿐인 것이 되게 하는 정부의 시행령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권력과 힘 있는 자들의 언설이 왜곡하고 비틀어 놓은 세상과 더불어, 그 속에 살면서 마찬가지로 왜곡되고 비틀어진 우리들의 생각과 태도, 우리들이 눈여겨보지 않아 악화될 대로 악화된 삶의 상태 또한, 안타까움과 분노를 키운다. 이상한 관변단체나 일베 회원들이 유가족들에게 부린 행패나,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바 세월호 사태에 대한 단선적이고 폭력적인 언행들은 2015년 우리 한국인의 한 얼굴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를 두고도 여론이 분열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국민 모두가 아연실색, 눈물을 감추지 않고 ‘이게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공유하며 슬퍼했던 2014년의 4월 중순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될 지경이다.

진상조사 활동이 말 그대로 진상을 조사할 수 있도록 뜻 있는 사람들이 힘 있는 대로 노력해야 하고 할 것이지만, 그 또한 우리 모두의 숙제이지만, 그것만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재난구조 시스템이 확립되고 그것이 잘 작동되는지를 국민으로서 확실한 설명을 듣고 계속 주시해야 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계속 키워 온 보다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이 기회에 들춰내고 바로잡고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커져 왔는가. 관련 사태가 조금이라도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었고 여전히 악화되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나로서는, 정부가 무엇을 감추려 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의식이 무언가에 홀린 듯 분열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면에서 보자면,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 자체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있어선 안 되겠지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있는 ‘교통사고’ 자체야 무슨 국가적인 문제겠는가. 비행기가 추락하고 자동차가 충돌하듯이 배 또한 침몰할 수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배에 갇힌 단 한 명의 승객도 구해내지 못한, 상상도 못 했고 믿기지 않았으며 여전히 믿기 어려운 사태, 세상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완벽한(!) 구조 실패라는 사건’이 근본적이고 국가적인 문제이며, 바로 이 자명한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의식이 바로 근원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착오, ‘바보야, 문제는 교통사고가 아니라 구조 실패라는 사건이야!’라고 외쳐도 메아리가 없는 우리의 의식 상황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이다.

몇몇 정치 모리배의 언동과 몇몇 언론 권력의 호도에 의해 초래된 이러한 상황은,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그린 세계와 다르지 않다. ‘진리성’에서 역사와 사실을 날조하고 ‘애정성’에서 고문을 자행하며 ‘풍요성’에서 기아를 조장하는 사회, ‘2+2=5’라고 진심으로 믿도록 이중사고를 강제하는 사회와, 우리의 현실, 우리 의식의 상황이 얼마나 다를까 싶다.

이러한 상태이기에, 숱한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고, 일 년이 다 되도록 진상 조사는 시작되지도 못했다. 바로 이러한 상태이기에, 이러한 사태의 피해자들에게 돌려지리라고는 인간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악의적인 비방과 중상이 이미 도를 넘었으며, 정부 시행령에 항의하는 시민과 행동을 함께 한 유족들에게까지 공권력의 폭력적인 진압이 가해졌다. 이것은 사람다운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고 세월호 사태를 근본적으로 진정시키는 유일한 길은, 남겨진 유족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하지 않은 것이 사태를 악화시켜 온 핵심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이다. 2014년 4월, 국민 모두가 하나 되어 슬픔과 분노를 같이 했던 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때의 슬픔으로 유족을 위로하고 서로를 위무하고, 그때의 분노 그 공분(公憤)을 해소할 수 있는 근원적인 문제 해결의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사태를 왜곡하는 자들의 조작에 말려들어 이중사고에 빠지지 않고, 이 모두가 인간의 문제라는 점을 의식하고 20140416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들 일반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우리의 사회를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

SF 작가 어슐러 르 귄의 소설에 「오멜라스를 떠나며」라는 것이 있다.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지만 그 행복을 가능케 하는 것이 도시 지하에 갇힌 어린 소녀 한 명의 희생이라는 설정 위에서, 그 비밀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도시를 버린다는 내용이다. 힘없는 소수의 국민이라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국가라면 그 국가가 ‘오멜라스’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이러한 사실을 쉽게 잊고 서로 헐뜯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라면, 이중사고에 빠진 「1984」의 주민들과 우리가 다를 바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잔인한 4월에, 이 작은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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