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한, 너무도 적나라한!
적나라한, 너무도 적나라한!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5.05.13
  • 호수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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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문학평론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며칠 전 일이다. 앞부분만 들춰 본 채 접어 두었던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 별」에 손을 댔다가, 흐름을 타다 보니 눈을 뗄 수 없어 새벽 세 시를 넘겨 가며 다 읽어 버리게 되었다. 마감을 두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다른 데 손이 가는 버릇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여전히 인상 깊게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서 그것을 제사(題詞) 삼아 쓰고자 한다.

“내가 영길이 너나 중길이를 왜 첨부터 어린애 취급했는지 알아?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개밥바라기 별」, 41쪽)

위 구절에는 우리의 눈을 끄는 두 가지의 통찰이 있다. ‘별’을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의 별을 보는 것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 하나다. 또 하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주 좋은 것들에는 슬쩍 거리를 둬야 한다’는 판단이다. 적나라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는 말라는 이러한 생각은, 아무런 함축도 에두름도 없이 곧이곧대로 주고받는 대화는 멋대가리 없다는 의식과 나란히 하고 있다.

내게는, 둘째 통찰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그 빛을 되살려내야 할 소중한 금언(金言)으로 보인다. 거리를 두지 않고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말라는 통찰의 가치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고는 있지만(!),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에 어쩔 수 없다. 거리를 두지 않은 채 적나라하게 문제를 짚어 보지 않을 수 없게 함으로써 나를 유감스럽게 하는 이 글의 주제란 바로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독서 실태이다.

독서를 주제로 하는 칼럼이라니, ‘책을 읽자’, ‘독서를 해야 한다’는 빤한 내용이 아닐 것인가, 짐작하실 것이다. 맞다고 할 수 있다. 함축적으로는 그런데, 여기에서는, 아무런 거리도 두지 않고 적나라하게, 우리가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독서의 효용과 가치에 대한 글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닐 테니, 복잡한(?) 인문학적 사고 없이 단순명료하게 사태를 정리해 보려는 것이다.

전국 416개 대학의 학생 255만 명의 연간 도서 대출 실태를 조사한 결과, 무려 40%의 학생이 단 한 권도 대출받지 않았으며, 1인 당 평균 7.8권으로 5년 내 최저를 기록하였다(서울신문, 2015.3.9). 대학생만 책을 안 읽는 것은 물론 아니다. 범위를 넓혀서 보면, 2013년 기준 20대의 연평균 독서량은 16.1권이고 30대는 12.0권이다(문화체육관광부). 만화나 잡지 등속을 모두 합한 것이 그러하다. 대상을 넓히고 추세를 더하여 2006년과 2010년의 독서 실태를 비교해 보면, 성인의 경우 연 평균 11.9권에서 10.8권으로, 학생의 경우 14.0권에서 16.5권으로 변화했음이 확인된다(국민 독서 실태조사).

실상이 명확해지도록 비교의 맥락을 좀 더 확장해 보자. 먼저 월 평균 서적 구매비를 보면, 2005년 상반기 2만 2,136원에서 계속 감소하여 2014년 상반기 1만 9,696원으로 10년래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서울경제신문, 2014.12.19). 권당 1만 원이 넘는 책값을 고려하면 한 달에 두 권을 사지 않는 셈이다. 같은 기간 오락·문화비는 월 평균 10만 2,189원에서 15만 1,167원으로 증가했다니, 서적 구매비의 비중은 21.7%에서 13.0%로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포괄적으로 보자. 2003년과 2012년의 ‘가구당 월 평균 문화예술 관련 지출 항목’ 비율을 비교해 보면, 독서는 22.2%에서 8.2%로 감소한 반면, 영화 관람은 29.5%에서 80.0%로 크게 증가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은 같은 기간의 문화산업 매출액 증가율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전체 매출액이 100% 증가한 이 기간에, 출판산업의 경우 고작 35.9% 증가한 반면, 영화·비디오 업계는 87.9%의 증가율을 보이는 것이다(문화체육관광부).

다른 나라와의 비교도 빼놓을 수 없다(이하, 주간경향 1121호). 한국출판연구소에 따를 때 한국과 일본의 도서시장 규모는 총액 기준으로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며, 인구수를 감안하여 환산해도 3.5배의 차이를 보인다. 약간 색다른 통계도 있다. 호텔스닷컴이 전 세계 여행객 2만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여행 중 호텔 침대에서 하는 행동과 습관’을 조사한 결과, 독서를 꼽은 한국인은 19%로 조사대상 25개 나라 중 꼴찌였다고 한다. 스웨덴 60%, 덴마크 58%, 러시아 56% 등이 수위를 차지하고, 24위인 멕시코도 25%가 독서를 꼽았다고 한다.

요컨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안 읽어도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 그 대신에, 더 많은 돈을 들이고 영화관을 찾는다. 머리를 쓰는 대신에, 시각적 즐거움을 탐닉해 온 것이다.

사태를 바꾸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의 근본적인 기능이 사고를 논리화하고 비가시적인 기능과 관계를 가시화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사고의 문법과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문명사적인 사실(마샬 맥루한, 「구텐베르크 은하계」)을 강조하면 될까. 할리우드적인 영화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영화 관람의 주된 효과란 순전한 오락에 불과하다는 점을 욕먹을 각오로 역설해야 할까. 우리들의 대화가 멋을 잃은 지 오래고, 공공의 말조차 뻔뻔스럽고 적나라하기 이를 데 없는 지경이 된 것이 독서 문화의 저하와 관련이 있다고 논문이라도 써야 할까.

울림을 주지 못하는 그러한 멋진 글들 대신에, ‘남들 보기 창피하지 않게 책 읽는 시늉이라도 하자’고 말하는 것으로, 이 노골적이고도 적나라한 그래서 멋이라고는 전혀 없는 글을 맺기로 한다. 빌 게이츠와 같은 경영학의 그루들이 밝힌 독서 권유 글들을 수집, 정리하는 서글픈 일에 손을 대지 않는 한 이렇게 적나라한 글을 쓰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독서 실태에 충격을 주기 어렵다는 생각을, ‘거리를 두지 않은 인문학 칼럼’이라는 역설적 상황의 변명으로 삼고자 한다. 구차하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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