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침마다 인터넷 뉴스 예닐곱 군데를 훑어보고, 직장의 전산망을 틈틈이 열어 보며, SNS도 짬짬이 켜 보는 생활을 돌아보다 보니, 세상에 말과 글, 언어가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업이어서 지금도 이 글을 쓰고는 있지만, 세상에 쓸데없는 말과 글이 너무 많은 것을 부정할 수 없고 그러한 말과 글이 행하는 폭력에 눈감기 어렵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모두가 끊임없이 말과 글을 뱉어 내고 있다. 인구가 늘어나서 말과 글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과 글이 늘어날 수 있고 늘어나게 되어 있는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말과 글이 넘쳐 나는 것은 시대적인 현상이라 할 만하다.
인터넷의 발명과 확산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이러한 상황을 낳았다. PC의 보급과 더불어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그러한 기술의 발전이 커뮤니케이션 확대의 바탕을 마련해 준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글쓰기 공간을 가질 수 있고 서로 어울려 이야기하는 공간에 참여하기 쉽게 되면서, 우리 모두가 항상적으로 글을 쓰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인터넷이 일반화되기 이전 시대의 글쓰기란 전문가들의 일이었다. 그 외의 보통 사람들은 학교과정에서 써야 하는 과제로서의 글쓰기를 제쳐 두면 일기나 편지 쓰기, 업무상의 서류 작성 외에는 글을 쓸 일이 없었다. 교육 과정과 사적인 맥락을 제외하면 완결된 글쓰기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인연이 없는 언어활동이었다고 할 만하다.
상황을 180도 바꿔 놓은 것이 바로 인터넷의 등장이다. 전 세계 차원으로 인터넷이 활성화된 오늘의 상황이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적으로 무언가를 쓰게 만들고 있다. 앞에서와 달리 지금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상황이 글쓰기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을 사실상 ‘강제한다’는 사실이다.
집안에 인터넷 선을 끌어오는 순간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라는 유혹이자 권고에 노출되고, 각급 학교나 직장의 구성원으로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특정 사이트를 이용해야 함은 물론이요, 온갖 뉴스와 정보 및 소문 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컴퓨터에 접속하게 만든다. 이에 더하여 취미생활이나 동호회 활동은 물론이요, 쇼핑과 은행 업무까지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편리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인터넷에 들어가 보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하루에도 수백 건씩 주고받는 청소년들의 문자 메시지는 물론이요, 사람들이 각종 게시판에 올리는 수많은 문자들은, 사고의 종합과 재구성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글’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지식의 구성 요소로서 한 편의 글을 이루는 자료로 쓰일 수 있는 ‘정보’조차도 아니기 십상이다. 글답게 보이는 글들조차, 스크롤의 부담을 피한다는 명목하에 강제되는 짧은 분량 속에서, 글의 품격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인터넷 글쓰기 상황이 부추기는 것은 글의 질이 아니라 양이다. 운영 주체가 개인이든 집단이든 모든 사이트는 보다 많은 게시 글과 보다 많은 조회 수를 욕망한다. SNS의 글쓰기 또한 글의 게시 횟수와 조회 수, 친구나 팔로워의 수, ‘좋아요’와 리트윗의 수를 늘리고자 몸부림치게 된다.
내용을 돌보기 전에 양을 지향하게 만드는 이러한 상황이 ‘과시적 소통’을 낳는다. 이것은 필요에 의한 상호소통이 아니라 소통을 표방하는 독백에 가까울 뿐이다. 인터넷 글쓰기의 시대에 와서 새롭게 등장한 글의 운용 형식인 ‘장식하기’, 곧 ‘펌질’로 자신의 사이트를 꾸미고 채우는(!) 일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글 다루기가 인간관계를 발전시키는 언어적 소통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은 자명하다(졸저, 「문학의 숲, 그 경계의 바리에떼」).
글 한 편의 분량은 줄이되 게시 글의 양적 증대를 지향하는 인터넷의 특성에 의해, 글쓰기의 본질적인 기능이 약화되고 글의 질과 품격이 저하되는 것 또한 명백하다.
말과 글의 고유한 기능이란 무엇인가. 사물과 사태에 해석을 가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외부 세계를 인간화하는 것, 대상에 동일성과 정체성을 부여하여 자연을 ‘우리의 세계’로 만드는 것이다. 말과 글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운용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도구이며, 문화와 문명의 맥락에서는 사고의 재구성을 통해 지식을 창출해 내는 의미심장한 기능을 수행한다(졸저, 「꿈꾸는 리더의 인문학」).
인터넷을 채우는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이상의 기능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띤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구분에 따르자면, 자기 감수성의 직접적인 표현에 그치는 ‘아마추어의 말’에 불과하다(「제2의 성」). 자신의 표현은 동물들도 행하는 기초적인 기능일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인터넷의 말이 말이 아니게 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말 아닌 말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회 수와 ‘펌질’, ‘좋아요’에 의해 그러한 말 아닌 말들이 무더기를 이루면서 여론을 왜곡하고, 손쉬운 편들기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없을 수 있는 갈등’을 증폭시킨다.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문명사적으로 진보임에 틀림없는 사실이 부메랑이 되어 문화를 단순화하고 왜곡시키는 것이다.
양이 위세를 떨치는 인터넷 상황에서 사고의 옥석이 분별되기 어려워짐은 돌이킬 수 없는 문제 상황처럼 보인다. 한병철의 지적대로, 커뮤니케이션이 ‘동일자의 지옥’ 속에서 최고 속도에 도달함으로써 ‘합의의 폭력’에 의해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일이 억압되고 있다(「심리 정치」). 말과 글이 자유로운 사고를 가능케 하는 터전이었음을 잊지 않는 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SNS를 위시한 인터넷 언어의 좌초에 직면하여 SOS를 치는 일이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