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중학교 2학년인 딸애가 내가 보기에도 제법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다니는 학교에서 이번에 자유학기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친구들과 함께 하는 협력학습 활동이 두어 개 겹쳐 있는 탓이다. UCC 만드는 모임도 갖고, 치어리딩 발표를 위해 연습도 하고, 모형 차도 만들고 해야 하는 모양이다. 밤늦게 친구들을 불러오기도 하고, 제가 친구 집에 가기도 한다. 기획과 연습, 실행의 맥락을 나름대로 구별하면서 친구들과 꼬물꼬물 준비해 나아가는 것이 보기에 흡족하다. 서로 약속을 잡고 하는 것이 힘들었던지 차라리 혼자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편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그 말을 들은 내가 협력학습의 의의와 중요성을 한바탕 늘어놓으려 하자 금방 수긍하고 나설 만큼, 협력학습 위주로 진행되는 자유학기제의 필요성과 의의를 알고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어쩌면 과제 준비보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재미에 더 끌리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 하지만 치어리딩 연습처럼 전적으로 놀이에 가깝다고 해도 그렇게 ‘함께’ 노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면, 나는 자유학기제가 좋기만 하다. 놀이가 협력학습에 앞선다 해도, 친구들과 더불어 시간을 갖고 무엇인가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혼자 시험공부를 하며 성적 경쟁에 내몰리는 것보다는 교육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믿는다.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교육이라는 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옛말에 남의 땅 밟지 않고 사는 사람 없다는 것이 있다. 표면적인 뜻은 아무리 부자라도 온 세상 땅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말이다. 사는 일이 실로 그러하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의 협력이나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살아간다.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문명을 이룬 이래 인간의 삶은 언제나 그러했다.
누군가가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를 획득하면, 누구는 그것을 먹기 좋게 가공했고, 누구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적절히 나누는 일을 맡았으며, 또 누구는 그러한 일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영양소의 섭취뿐 아니라, 종족의 유지를 위한 후손의 생산과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방어, 심신의 안정과 쾌락을 위한 유희 등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한 분업이자 협업이 이루어져 왔다. 오늘날의 사회가 보이는 수많은 직업들이 그러한 협업 분화 과정의 결과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새삼 주목한다면,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는 모든 학생들,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 강조해야 할 바가 뚜렷해진다.
자신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사회 전체 차원의 협업 속에 놓여 있어서,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덕을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자신의 현재 상태가 만족스럽다면 주위의 사람은 물론이요 한 번 본 적도 없는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며,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정도로 자기 자신도 남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현재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상황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타인의 도움을 끌어내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타인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능력’으로서의 리더십을 함양시켜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이러한 리더십을 갖추는 좋은 방법 한 가지는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바 ‘커넥터’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러한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을 남들보다 훨씬 많이 갖는 사람이 커넥터이다. 예컨대 보통사람들보다 전화번호부의 목록이 몇 곱절 많은 사람이 커넥터이다.
어떻게 커넥터가 될 것인가. 한 번 맺어진 타인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특별한 인연으로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청중들과 더불어 어떤 명사의 강연을 들은 경우, 그에게 직접 연락하여 둘만의 관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냥 연락하려고만 한다면 스토커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를 멘토로 삼거나 어떤 구체적인 일의 조력자로 요청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노력하고 실력을 쌓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사회가 서로 협력하는 부문들의 총화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미래의 주역들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또 다른 일은 지식인 되기이다. 사르트르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멋지게 규정했듯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으로서의 지식인이 되도록 청소년들을 가르쳐야 한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지식인이란, 누가 하는 어떤 일이든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사회 각 부문의 일들에 관심을 갖고 관여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실을 도외시한 채 자신의 전문분야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지식 엔지니어’와 달리, 지식인은 사회 공동체를 받치는 협력관계가 약화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어떤 그룹이나 조직 혹은 기업 등이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치는 일로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할 때, 사회 전체의 입장을 고려해서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지식인의 태도를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키우고 권장해야 한다.
감사하는 삶뿐 아니라 커넥터와 지식인의 삶 또한 이루기 어려운 무언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 서로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지 않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실행할 수 있는 일인 까닭이다. 협업의 기회가 커지는 자유학기제가 내년부터 중학교 전체에 시행된다는 사실이 반가운 것은, 이러한 사정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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