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표절과 우리의 과거
문학의 표절과 우리의 과거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5.06.24
  • 호수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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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국민 작가의 한 명이라 할 만한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문제로 여론이 시끄럽다. 국민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 사태와 성완종 사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총리 인선 문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 등과 같은 굵직한 사회 문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문학이 이슈가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같은 것이 아니라 표절 문제여서 대단히 유감이지만, 인문학의 터전이 훼손된 지 오래인 시대에 인문학의 한 축인 문학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만큼은 나쁘게 볼 일만도 아니지 싶다. 앞으로의 처리가 지혜롭게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면, 긴 안목으로 볼 때, 인문학의 소생에 의미 있게 기여한 사건이 될 수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작가를 포함하여 사실상 표절을 부정하는 논자도 없지는 않지만, 언론에 공개된 부분만 봐도 표절인 것은 분명하다.

문학작품의 효과가 한두 문장이나 문단에 오롯이 좌우되지는 않는 법이라는 것은 문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설령 작품의 효과가 다르다고 해서 작품 일부의 표절 사실이 문제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문학예술 작품의 경우를 두고도, 다른 텍스트들에서처럼 ‘연속된 단어 여섯 개의 일치’ 정도로 표절 여부를 따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는 가능하다. 패러디나 풍자, 페스티쉬, 오마주 등 문학예술의 창작에서는 일반인들에게 표절과 유사해 보일 수도 있는 창작 방법이 있고, 문학예술의 역사가 보여주듯 그도 저도 아닌 아류작들은 또 아류작으로서 나름대로 존재 근거를 가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사례는, 이 모든 경우와 다르다. 작품 효과 면에서든 창작 방법 면에서든 이해해 줄 여지가 없는 엄연한 표절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작가의 사죄 표명과 출판사의 상응하는 조치가 즉각 있어야 했다.

주지하듯이, 문제가 커진 것은 이 국면에서였다. 신경숙은 사죄의 말 대신에 사실관계의 부인과 ‘유체이탈’ 식의 모호한 변명의 메시지를 ‘출판사를 통해’(!) 내놓았고, 한 세대 이상 동안 수많은 지식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왔던 창비의 첫 반응은 거기에 더하여 현학적이고도 권위적인 해석으로 그녀를 변호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사태는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으로 내달렸다. ‘문학 권력’ 문제가 불거지고, 급기야 검찰 고발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문단 내부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한 문인을 위시하여 상당수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반응 또한 문제적이다. 문단이 ‘이 사회에서’ 어떠한 권력도 지닌 것이 아닐진대, 만사를 제멋대로 하려는 정치인들조차 피해가기 어려운 표절 문제를 소설가는 피해갈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이러한 발상이 어떻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면 검찰이 아니라 법 자체에 대해서라도 저항해야 마땅한 일이지만(여기서 굳이 헨리 데이빗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을 끌어들어야 할까?), 표절이 문제라면 그가 누구든 어디서 작품을 내놓았든 상관없이 잘못은 잘못이므로 검찰이 다가오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까닭이다. 출판사의 조치만 있다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표명이 있었으므로 이 글이 게재될 때는 이미 사태가 해결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사법적인 접근과 무관하게, 문단 차원의 문인들 사이의 자정 노력이 필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앞장을 서서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도 이런 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출판사도 동일한 취지의 자리를 가지겠다 했으니 그 또한 기대할 만하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사실이 있다. 문제가 된 작품의 발표 시기가 1995년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전의 일인데, 그 당시 우리 사회에 표절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였는지만큼은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단적인 사례라 할 책의 무단 복사가 1990년대 내내 횡행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부끄러운 일임은 분명하지만,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때의 불법 서적 복사 사례들을 찾아 응징할 일은 아니라 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1990년대 중반의 표절 사례를 두고 마녀 사냥을 하듯이 몰아가는 것도 적절치만은 않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저작권 제도가 처음 시행된 것은 1957년이라지만, 청문회가 아마도 처음 도입된 것은 1988년이고 사회 지도층의 표절이 청문회에서 문제된 것도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표절이 문제라는 의식’이 형성된 것 자체가 아마도 1990년대 말 혹은 빨라야 중반 정도부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환기해 보는 것이 신경숙의 잘못을 두둔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대가를 치러야 하며, 이제는 치르게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 본 취지는, 현재 우리의 사고와 자세를 성찰함으로써 이 사태를 지혜롭게 풀어가자는 뜻에서이다. 예컨대 단지 우리가 후대에 태어났다는 이점에 기대어 친일파의 잘못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후손들을 징치하고자 한다면 잘못인 것처럼, ‘우리의’ 과거와 그로부터 이어진 현재에 대해 잘못을 저지르는 우는 피하자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해당 작품이 실린 책에 대한 출판사의 적절한 조치로, ‘문학 권력’ 운운의 논의가 그 자체로 커져가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문단에 문제가 있다면 상업주의이지 권력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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