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근 소장의 목소리엔 그의 삶이 모두 담겨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27년 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산재근로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안전관리자로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사업장의 무재해를 이끌며 유능한 안전관리자라는 세간의 평가가 쏟아질 때,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한 일을 할 것”이라며 산업안전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본지는 마치 ‘안전’이라는 제목의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아온 정 소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산업재해를 입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2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마치 어제일 같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저는 브라운관용 유리를 만드는 모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사고가 발생한 그날은 가스 관련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작업인 만큼 세밀히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하는 마음에 집중을 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났고 순식간에 제 주변이 불바다가 됐습니다.
그렇게 잠깐 동안 안전을 생각하지 못한 일로 저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었습니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19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화상 치료를 받았던 것입니다. 사람 타는 냄새와 살려달라는 외침으로 가득 찬, 마치 지옥과도 같은 화상병동 중환자실에서 말이지요.
Q. 산재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저의 고통을 눈물로 지켜보시던 어머님과 병실 밖 복도에서 소리죽여 기도하던 아내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결혼한 지 갓 3개월밖에 안된 아내를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게는 못할망정 차가운 병동 복도에서 2년여 가까이를 보내게 했다는 미안함이 큰 원동력이 되었지요. 꼭 살아나서 이 미안함을 갚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었습니다. 또 치료를 받으며 ‘다시 일어서서 나 같은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앞장서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 결심이 제가 다시 일어서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Q. 유능한 안전관리자로서도 명성을 떨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사에 복귀를 한 후 자원해서 안전관리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친 듯이 안전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저의 노력만큼 바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곳은 브라운관용 유리를 제작하는 업체 중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회사였습니다. 규모도 큰데다 유리업종 자체가 공정상 위험요소가 많다보니 안전사고가 상당히 많이 발생하는 곳이었습니다.
직원들 대부분이 ‘나만 안 다치면 돼’, ‘유리공장은 원래 사고가 많아’ 등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이런 상황을 몇 달 동안 지켜본 결과 저는 우선 직원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도입한 게 바로 ‘자율안전’시스템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업장에서는 최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사고를 통해 얻은 경험에 의하면 작업자 본인이 안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스로 안전활동에 나서면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근로자와 관리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 ▲내 일터(설비·공정)는 내가 안전하게 만든다 ▲내 부하 직원은 내가 안전하게 지킨다 ▲우리 회사의 안전은 우리가 지킨다 등의 신념을 갖고 안전활동에 나서줄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그러자 직원들 몇몇이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대한 안전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채 몇 달도 안 돼 이런 분위기가 사업장 전체에 퍼졌고, 결국 유리업계 최초로 ‘무재해 목표시간 15배 달성’이란 놀라울만한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저희 사업장은 1998년 7월 1일 전국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대통령 단체표창을 수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저는 ‘이제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일하겠다’라는 결심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사표를 내고 안전교육 강사로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Q. 강의를 하시면서 강조하시는 게 있다면?
12년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교육원에서 첫 강의를 시작한 이래 벌써 2,760여회나 강의를 했습니다. 건설현장, 제조업 현장 등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곳에서 수없이 많은 강의를 했지만 제가 말하고자하는 주제는 늘 한결 같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안전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안전은 ‘자기사랑, 가족사랑, 회사사랑,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먼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면 자신부터 소중히 여기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합니다. 또 가족을 위한다면 역시 안전을 해야 합니다. 안전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겪는 이는 바로 가족입니다.
그리고 회사가 발전하길 원한다면 ‘안전’부터 하시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회사에 중대재해가 발생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요? 보상비용, 사고수습비용, 현장개선비용 등 막대한 직접손실이 발생합니다. 거기에 근로자들의 사기가 떨어져 생산성이 저하되고,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는 등의 간접손실도 입게 됩니다. 이 모든 게 단지 ‘안전’을 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안전하십시오. 그게 회사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지름길입니다. 끝으로 작년 한해만도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이 17조원이라고 합니다. 세계 5대 공항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을 짓는데 15조가 들었습니다. 산재만 막아도 이런 공항을 하나 더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안전을 하면 사회가 발전하고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Q.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크게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빨리빨리’라는 결과제일주의 ▲‘괜찮아요’하는 적당주의 ▲‘지키면 손해’라는 탈법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병’에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을 급하게 합니다. 성급히 일을 진행하다 사고가 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습니다. 빨리 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미리미리’일을 하십시오.
그 다음으로 지적할 것은 ‘괜찮아요’ 또는 ‘요 정도면 되겠지’라는 식의 ‘적당주의’입니다. 99.9%가 완벽해도 0.1%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바로 안전사고입니다. 사고를 막는 것은 오직 철저하고 완벽한 예방뿐입니다. 안전에 ‘적당히’라는 것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사회에 만연한 ‘지키면 손해’라는 ‘탈법주의’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나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있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어찌 나의 안전이 확보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법의 준수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Q. 산재를 줄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안전사고를 감소시키는 방법에는 안전시설, 안전장치, 법의 강화 등 다양한 수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상이나 이를 운용하는 이는 결국 사람입니다. 즉 사람의 의식이 확고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안전장치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관리·감독자는 물론 근로자에 대한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산재감소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 교육은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콩나물은 한 번 물을 줬다고 바로 자라지 않습니다. 꾸준히 물을 주고 관심을 갖다 보면 어느새 크게 자라있습니다. 안전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다보면 안전의식은 어느새 크게 성장해 있을 것입니다.
Q.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장에서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방심을 하지 말고, 늘 준비태세를 갖추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추락사고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형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높이 3m미만에서 근로자가 추락하는 사고입니다.
헌데 아직도 많은 근로자분들이 이 2~3m를 우습게 여기고,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가벼운 부상 정도로 끝날 사고가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듯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첫 번째는 바로 방심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평소 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천냉동창고 화재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불러왔던 이 사고도 결국 그 시작은 작은 불씨였습니다. 이 불씨 하나를 제압하지 못해 큰 화재가 발생한 것이지요.
늘 안전사고에 대비한 마음가짐을 갖고, 그 대응책을 항시 연습하시길 바랍니다. 발생한 사고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도 매우 중요한 예방법입니다.
Q. 전국의 근로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신에게 꿈이 있다면, 희망이 있다면, 계획이 있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고 싶다면 안전부터 하시길 당부 드립니다. 안전을 하면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지만 안전을 하지 못하면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됩니다.
하다못해 암이나 백혈병 등의 중대질병에 걸리는 것은 가족들과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주어집니다. 하지만 안전사고는 이 이별을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시고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내 동료와 가족을 위해서는 안전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현)정HR교육연구소 소장
현)사단법인 한국강사협회 상임이사
현)대한민국 명강사 27호
현)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현)중소기업인력개발원 전문교수(샹산성향상과정)
2007대한민국안전산업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