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성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성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5.07.01
  • 호수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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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지난달 26일 미국의 백악관이 무지갯빛 조명으로 장식되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결정을 축하하는 의미에서였다. 이 결정으로 미국의 50개 주 모두에서 동성 간의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고 한다.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의식 수준에 비춰보면 놀라운 일이라 할 만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보다 앞서 동성 결혼을 허용한 나라가 무려 20개 국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뉴스를 접한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외국인 노동자 문제였다. 미국에서의 동성 결혼 허용 합법화와 국내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얼핏 보면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외국인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갖는 일반적인 문제에 닿아 있는 까닭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의 지구촌에 살면서 갖춰야 할 ‘외국인에 대한 호의와 친절’을 특정 외국인들에게만 베풀고 그와는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그 반대로 터무니없는 경계와 멸시의 감정을 드러내곤 하는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태도의 이중성을 조금이라도 의식해 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차별이 무엇에 따라 이루어지는지를 즉각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창피하(고도 무섭)게도 그것은 ‘피부색’이다.

백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구는 반면, 우리보다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 예컨대 인도나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에게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내세워 얕잡아 보기 십상인 것이, 대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간간이 뉴스를 장식하는 외국인 관련 사건, 사고 들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뒤의 문제에 대해서는 김재영의 소설집 <코끼리>나 박범신의 장편소설 <나마스테>, 이반장의 단편소설 <납작쿵> 등에서 심도 있는 고발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보다 피부색이 짙은 아시아인들을 쉽게 무시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착취하기까지 하는 우리의 행태를 떠받치는 것은 무엇일까.

서양의 백인들에 대한 태도가 정반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를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 xenophobia]으로 일반화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현상적으로는 ‘인종’에 따른 차별이라 할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유태인을 학살한 파시즘의 만행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KKK단이나 (조금 성격이 다르기는 해도) IS 등에 동조하지는 않으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종주의’로까지 나아갔다고 규정할 것은 아닌 듯싶다.

이러한 자리에서, 서양의 백인과 우리보다 피부색이 짙은 아시아의 황인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낳는 요인을 따져보면, 서로 긴밀히 관련되기는 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서양추수주의요 다른 하나는 경제만능주의이다.

백인에 대한 우리의 호의적인 태도 바탕에는 서양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가 깔려 있다. 압축적인 근대화를 통해 숨 가쁘게 서구화를 추구해 온 지난 역사와, 서구적인 문화를 우리 것으로 자유롭게 누리는 현재의 상태, 서구의 대표격이라 할 미국에 대한 무한에 가까운 신뢰 등이 그러한 선호를 뒷받침한다고 하겠다. 요컨대 서구가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 지나온 역사를 통해 그렇다고 계속 배워 온 탓에 뼛속깊이 스며들어 거의 무의식이 되었다고 할 만큼 폭넓게 퍼진 그러한 의식 상태가, 백인에 대한 우리의 근거 없는 호의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 상태에서는, 서구화란 근대화의 한 가지 방식일 뿐이라는 사실 곧 근대화의 도정은 지역마다 문화마다 다르다는 엄연한 사실(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을 볼 수 없게 된다(위르겐 하버마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우리의 삶을 우리의 기준으로 보는 대신 서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의식의 식민지 상태에 여전히 빠져 있는 까닭이다(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짧은 호흡으로 제시한 이러한 해석을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피부는 노랗지만 머릿속은 하얀 주인공 ‘바나나맨’을 통해 우리들의 의식 세계를 파헤친 박민규의 재미있는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을 권해 드린다.

우리보다 피부색이 짙은 아시아인에게 행하는 폭력의 바탕에는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의식 상태 외에 한 가지 요인이 더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출신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국가의 경제력에 대한 판단이 맞는 경우라 해도, 그것만으로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잘못 잡는다는 것은 지구촌 시대의 시민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경제적인 수준으로 인금을 매기는 것이야말로 돈만 아는 ‘경제적 동물’이나 할 짓이기 때문이다(앞으로 한 세대를 내다보고 잘 따져보면, 이들 국가의 경제력이 우리만 못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역설할 필요는 없으리라).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도 모든 외국인들에게 마음을 열어야만 한다. 출산률이 낮아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길의 하나는, 각종 이민을 장려하고 다문화 가정을 따뜻하게 보듬는 것일 수밖에 없다. 취업 입국자들이 한국 경제의 한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사실도, 그들을 공정하게 대하면서 더욱 비중을 키워야 할 터이다.

이러한 사정을 직시한다면, 피부색이나 경제력, 가족 구성원의 형식 등 외면적인 데 갇혀 있는 선입견을 버리고, 내외국인을 떠나 모든 사람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은 물론이요 우리 각자의 인간성 회복에 얼마나 절실한지가 자명해진다. 미국의 동성 결혼 합법화 소식에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떠오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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