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소설 연구를 전공으로 하는 인문학자로서 나는 방학 기간을 이용해 그동안 못 읽은 작품들을 챙기곤 한다. 반 정도 넘긴 이번 여름방학 기간에는 이를 두 갈래로 진행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포함하여 상품성이 있는 대중소설을 읽는 한편, 그동안 마음에만 두고 손을 대지 못했던 고전 작품도 펼쳐 본 것이다.
대중문학으로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부터 꼽아 보면 장현도의 <골드 스캔들>(새움, 2015)이 첫손에 온다.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금의 유통 물량을 조종하는 숨은 세력의 이야기이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금융 팩션을 써 왔다는 처음 보는 작가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서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었다. 음모를 다루는 비슷한 소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보다 훨씬 흡인력이 있어서, 조만간 충무로나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나올 법한 이야기라 하겠다.
출간된 지 1년쯤 된 김진명의 <싸드>(새움, 2014)도 보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래 그의 소설에는 손을 대지 않다가, 대중문학을 강의하는 데 필요하기도 하고 ‘싸드(THAAD)’ 문제에 관심도 있어서 펼쳐 보았다. 문제의식이 주목을 끌고 전체적으로 스릴 있게 잘 읽히는 편이다. 주인공의 설정이 자연스럽지 않아 거북하고 결말부가 황당하여 불쾌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냥 ‘김진명 표’ 대중소설임을 재차 확인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이들의 반대편에서 세계문학사에서 꼽는 고전들에도 손을 댔다. 문학 전공자로서 아직 안 읽어 봤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한 작품들을 건드리고 있는 것인데, 단테의 <신곡>(민음사, 2007)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생각의나무, 2011)가 그것이다.
<율리시스>는 사 둔 지 오래여서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작품인데, 펼치면 B4가 되는 46배판 크기에 무려 1,323쪽(인터넷 서점에서 확인해 보니 무게만도 2.7kg이나 된다!)이나 되어 도저히 시간을 내어 읽을 엄두를 못 내던 책이었다.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없다는 점이 핑계거리도 되어 여태 읽지 않았던 것인데,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소설에 대한 긴 호흡의 연구를 준비하면서 드디어 펼치게 되었다. 전문가의 눈에 따른 것이겠지만 ‘의식의 흐름’ 기법을 뚜렷이 느낄 수 있어서, 예상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아직 1/4 정도밖에 보지 못했는데 개학 전에 마치자고 다짐 중이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은 이삼일 전에 책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책을 읽는 재미가 크지는 않다. 그보다는 저명한 낭만주의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려 넣은 수많은 삽화들, 현대의 웬만한 일러스트보다 한층 모던한 그림에 눈길이 간다. 기본적으로 가톨릭의 세계관 위에 놓여 있는 것이어서 종교가 없는 내가 읽기에 편치 않은 작품인데다, 심심찮게 나오는 단테의 자화자찬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까닭이리라. 그럼에도, 신화에서부터 단테 당대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보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글의 흐름상 소설을 소개하는 성격을 부정할 수 없는 터이므로, 위의 양 갈래 외에 방학 기간 중 읽은 추천할 만한 작품들을 몇 편 더 꼽아 둔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민음사, 2015)는 시쳇말로 ‘강추’ 대상 작품이다. 경쟁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거기서 승리하는 자만이 인정받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한걸음 바깥에 선 인물의 시선으로 멋지게 포착하고 있다. ‘자산성 행복’과 ‘현금 흐름성 행복’이라는 행복의 두 가지 종류에 대한 통찰도 값지다.
1980년 광주에서 연원하는 고통과 죄, 슬픔의 문제를 깊이 천착해 온 자신의 작품 세계에 하나의 매듭을 짓는 정찬의 <길, 저쪽>(창비, 2015)도 추천해 본다. 진지한 본격문학의 소설이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지, 긴 호흡의 작가의 사유가 가까운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우리의 삶을 깊이 돌아보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새삼 일깨우면서, 우리가 돌봐야 하는 것이 일신의 안녕만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 미쳐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좋은 작품이다.
이상이 연구가 아닌 취미 맥락에서 내가 방학 기간에 읽은 주요 소설들이다. 대중문학과 고전을 양 끝으로 하고, 이른바 본격문학이 가운데 놓인 형국인데, 나는, 이러한 폭을 갖추고 소설을 읽는 것이 좋고도 필요하다고 본다. 차이를 인정하며 다양성을 유지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문화 전반에서뿐만이 아니라 한 개인의 문화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믿는다. 바로 그러할 때 문화(생활)의 특징인 풍요로움이 한층 더해지는 까닭이다.
고전(classic)이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인류의 문화유산 중 순금 같은 부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다들 훌륭하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작품’이 된 감이 있지만, 고전적인 작품들에는 인간 삶의 본성과 인간 사회의 보편성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인간적인 품격을 완전히 잃기 전에, 우리 모두 접해 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대중문학도 멀리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유희적 인간(homo ludens)’의 본성에 따르는 것이면서, 순간적이고 중독성 강한 현대의 오락물들보다는 훨씬 호흡이 길고 능동적인 즐거움을 주는 까닭이다.
이들 가운데에 폭넓게 펼쳐져 있는 다양한 소설들도 두루 읽을 만하다.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통찰을 때로는 지식과 지혜를 거기서 얻을 수 있다. 두 시간이면 끝나는 영화 한 편 보는 가격으로, 짧아도 이삼일 동안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효율성(!)도 소설 읽기의 장점이라 하면 망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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