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중국 톈진(天津)시 빈하이(濱海) 신구 탕구(塘沽)항 내 위치한 루이하이(瑞海)사의 위험물 물류창고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8일 현재 114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특히 톈진시 당위 선전부 궁젠성(?建生) 부부장에 따르면 현재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부상자가 698명인데, 이중 57명이 위독하거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데다 실종자수도 70명에 달해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사고는 추가적으로 유해위험물질 누출의 우려도 낳고 있다. 뉴웨광 톈진시 공안소방국 부국장에 의하면 사고가 난 루이하이사 창고에 유독성 시안화나트륨(청산가리) 700t과 질산암모늄 800t, 질산칼륨 500t 등 약 3000t의 유해위험화학물질이 적재돼 있던 사실이 확인됐다.
중국 당국은 시안화나트륨을 비롯한 독성 물질이 빗물에 닿으면 폭발할 수 있고 추가 누출도 발생할 수 있어,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3㎞ 이내 구역에서 유독물 처리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모래 등으로 방호벽도 세웠다.

◇人災일 가능성 점차 높아져
이번 사고는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중국 언론 상당수가 루이하이 물류회사의 인허가 과정과 유독성 화학물질 관리에 상당한 허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루이하이사는 2012년 말 설립 당시만 해도 일반 자재를 보관하는 단순 창고로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사고 발생 2달 전인 6월 말경 갑작스레 유독화학물질 취급 허가를 받은 것이 확인됐다. 여기서 문제는 취급 허가를 받기 이전부터 유독 화학물질을 계속 취급해 왔다는 점이다.
또 루이하이사가 위험물 취급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저지른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규정된 양(24t)을 넘어 시안화나트륨을 보관했던 것은 물론, 화학물질을 보관하는 과정에서도 거리 확보, 적재 총량 등에 관한 규정을 대거 위반한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에서는 550㎡가 넘는 유독 화학물질 창고는 다중이용시설이나 주거 지역, 도로, 철로, 수로 등으로부터 1㎞ 이내에서는 운영이 금지된다. 그러나 이 회사의 물류창고는 주거지역에서 60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중국 당국의 허술한 인허가 관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미숙한 초기 대응도 이번 폭발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확산시키는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탄화칼슘은 물과 반응하면 폭발가스가 발생하고, 시안화나트륨은 물과 만나면 독가스 성분인 시안화수소를 생성할 수 있는데, 누출물질을 명확히 확인하지 못한 상태로 진화작업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이 물을 뿌리면서 피해가 커진 것이다. 실제 이번 사고로 인한 사망자 114명 중 39명이 소방관이고, 실종자 70명 중 64명이 소방관이다.
이외에도 부실한 안전검사, 정경유착 등이 사고를 불러왔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최고인민검찰원도 이같은 의혹을 염두에 두고 직권 남용, 직무유기, 법규 위반 등의 혐의를 철저하게 조사해 혐의가 드러날 경우 엄중한 형사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기업 피해 확산…도요타 공장 등 가동 중단
이번 사고로 중국에 진출한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입은 피해 역시 막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톈진항이 수입 자동차의 약 40%가 들어올 정도로, 중국 북동부 최대의 해운 관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는 수출을 위해 톈진항 인근 야적장에 주차해 놓은 4100여대 차량이 이번 사고로 훼손됐다. 피해액만 최대 1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행히 전액 보험을 들어 실질적인 손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분간 중국 수출 물량을 광저우항 등 다른 항을 이용해 수급해야 하는 등 적잖은 차질이 예상된다.
또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50명 이상의 직원이 폭발 사고로 다쳤으며, 사고 발생 지점 인근에 있는 생산라인 3곳이 사고 여파로 17~19일 동안 작업 중단됐다. 미국의 산업 장비 제조업체 존디어 역시 톈진항 인근 공장의 작업을 무기한으로 정지시켰다.
◇정부, 유해화학물질 저장과 유통 등 안전관리 전반 점검
우리 정부는 이번 톈진항 폭발사고를 계기로 국내에서 비슷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특별안전점검에 나선다.
국민안전처는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 6곳과 화학물질 저장소가 있는 항만 11곳을 대상으로 이달 18일부터 26일까지 관계부처 합동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점검은 사안의 긴급성을 감안하여 부산, 울산, 여수 등 대규모 항만을 우선으로 실시한다.
또 안전처는 20일 안전정책조정실무회의를 소집, 유해화학물질 저장과 유통 등 안전관리 전반과 함께 사고 대응체계도 점검할 예정이다.
이번 특별안전점검에는 안전처 외에 고용노동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와 시도 소방본부도 참여한다.
이성호 안전처 차관은 “유사사고가 국내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이번 점검에서 문제점을 최대한 찾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