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무더위가 한참인 8월경, 강릉시가 태풍 ‘루사’로 한바탕 큰 난리를 겪었다. 갑자기 내린 폭우로 대관령에서 내려온 물이 시내를 덮쳐 많은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서울에서 물탱크 차량 20여대가 10일간 지원되었고, 서울 소방공무원들도 1박 2일 간격으로 교대로 지원근무에 임했었다.
필자도 식수지원을 위해서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집집마다 쓰레기더미가 가득 쌓여있는 가운데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오물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들이 아직까지 기억에 선하다.
태풍 ‘루사’ 때에는 1904년 한반도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일일강수량이 가장 많은 870.5mm(강릉 기준)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1년 평균 강우량이 1200mm인 점에 비추어 볼 때 연강수량의 2/3이상을 기록한 엄청난 수치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 24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무려 5조이상의 재산피해가 났으니 그 심각성은 아마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태풍 얘기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한다. 지난 1959년 9월에는 사라호 태풍이 울진을 강타한 바 있다. 바로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당시 사라호 태풍은 울진 지역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폭우에 한마을이 둥둥 떠내려 간곳도 있고, 우리 논을 비롯해 마을마다 토사로 농경지가 매몰되는 피해도 발생했다. 나중에 토사를 논 한 모퉁이에 섬같이 쌓아두고, 돌을 골라내고, 몇 년간 호미로 모를 심었을 정도로 당시 그 피해가 매우 막심했었다. 만일 산에 나무가 많았다면 적어도 토사피해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중 가장 강력했던 것은 2003년 9월 부산지역을 강타한 매미였다. 당시 최대 순간 풍속 60m에 이른 강풍으로 대형 크레인 11대가 순식간에 무너져 고철 덩어리로 변했다.
전국단위로 피해를 가장 많이 받았던 때는 1925년 을축년이다. 7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쉬지 않고 비가 내렸으며, 이틀 후 15일 밤부터 19일까지 5일간도 서울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이 기간 중 강우량은 753㎜였으니 서울 지역 연평균 강수량의 반이 열흘 사이에 쏟아진 셈이다. 지속된 폭우로 인해 한강이 범람해 이촌동·뚝섬·잠실·풍납동 지역 대부분이 사라지다시피 했고, 용산·마포·양화진 일대도 이례적으로 물에 잠겼다고 한다. 풍납토성과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발견된 것도 이때의 홍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도심 지역도 수해를 입었다. 남대문 바로 앞까지 물이 차올랐고 청계천 하수가 우물에 흘러들어갔으며, 뚝섬 정수장도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이 때 익사자만 404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한강의 뚝섬에서 기록된 13.59m의 수위는 현재 수방 대책의 수위기준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만일 그 당시의 비의 양이 현재 수도권에 내린다면 과연 우리의 수방능력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필자가 이렇게 태풍피해들을 나열한 것은 태풍에 대한 경각심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최근 들어 태풍이 점점 강하고 독해지고 있고, 초당 50m이상의 강풍도 잦아지고 있다. 그 주요 원인은 지구 온난화영향으로 인한 해수면의 온도 상승이다. 태풍은 해상을 지나는 동안, 바다가 뿜어낸 수증기가 물방울로 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소용돌이의 힘을 더 강력하게 키운다. 때문에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초강력 태풍도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더이상 태풍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2005년 미국을 초토화 시킨 ‘카트리나’처럼 초강력 슈퍼태풍들이 닥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최근 기상환경을 보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태풍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각 지자체들이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때 이들 대책의 기본은 자연에 대한 사랑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분명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민둥산으로 인해 토사 매몰의 피해가 발생한 지역의 경우 산림을 더욱 늘려나가면 태풍피해는 그만큼 더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사랑의 자세에다가 체계적인 안전시스템을 철저히 갖추고 태풍을 맞이한다면, 자연도 분명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천재지변은 인명과 재산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회적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고, 대응체제 마련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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