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경주 교동에 최 부잣집 고택이 있다. ‘사방 100리 내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집이다. 보통의 관광객이라면 한 번 휘둘러보고 나올 법도 하지만, 최 부잣집의 내력을 알게 되면 경주를 떠나서도 오랜 시간 그 집을 생각하게 된다. 최 부자 가문은 긴 세월 동안 부를 유지하면서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사례에 해당한다. 무려 300년 가까이 커다란 재산을 유지했는데, 그 과정에 보통사람들이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민간 설화에 따르면, 다른 부자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팔려고 내놓은 땅이 있으면 소작인들이 앞을 다퉈 가며 최 부자가 사도록 알려 주어서 더욱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소작농들이 그리 한 이유는, 최 부잣집의 경우 남들보다 소작료를 훨씬 싸게 매겼기 때문이었다(<진주·의령 부자와 경주 최 부자 살림>, 『한국구비문학대계』).
요컨대 최 부잣집은 가난한 사람들이 배척하지 않는 이상적인 부자의 모습을 실천한 드문 사례라 할 만하다. 이러한 점은 최 부잣집의 ‘육훈(六訓)’에서 잘 드러난다. 여섯 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2.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3.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4.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5.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6.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2, 4, 6의 세 가지 교훈을 보면, 최 부잣집이 어떤 성격의 부자였는지가 확연해진다. 일정 정도의 부를 최대치로 하고, 재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남들의 어려움을 이용하지 않으며, 주위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실천하는, ‘공동체 의식이 있는 부자’였다 하겠다. 여기에 3과 5를 더하면, 최 씨 집안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말로만 듣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직접 실천한 모범적인 본보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쉽게도 현재 최 부잣집은 더 이상 부잣집이 아니다.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고 민족자본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최준(1884~1970) 선생이 1947년에 전 재산을 기증하여 대구대학을 설립하고 삼성 집안에 넘겼기 때문이다. 그 대구대학이 청구대학과 합쳐져 영남대학교가 된 이후로는, 최 씨 집안이 학교 운영에도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말 그대로 재산을 ‘날린’ 셈이 되었다 한다(한겨레신문, 2013.2.2).
‘육훈’을 실천하며 일제시대에도 부를 잃지 않았던 집안이 이렇게 영락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여기에 더하여, 최준 선생의 아우 최안(1889~1927) 선생이 독립운동가로서 옥고에 따른 지병으로 불과 38세에 사망했다는 사실,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예우가 형편없어서 대다수가 가난의 굴레에 갇혀 있다는 사실, 여기에 더하여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최현열 선생이 최근 분신자살한 사건 및 그에 대한 경찰의 조치 등을 아울러 생각하면, 우리의 씁쓸함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커질 뿐이다.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모든 것을 던진 선열들과 그 후손에게 이리 대하는 것은, 이제는 시쳇말이 되어 버린 ‘국격(國格)’을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박하게 생각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구성원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공동체가 어떻게 자신의 안녕과 발전을 계속 바랄 수 있을까 싶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면, 이런 문제들부터 당장 해결해야 마땅하다. 의인과 그 후손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에는 의로움이 살아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최 부잣집의 교훈은 ‘육훈’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다스리는 교훈으로 ‘육연(六然)’ 또한 있는데, 이를 음미하는 것으로, 앞의 문제를 대하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을 추슬러 본다. 최 부잣집의 ‘육연’은 세 갈래로 둘씩 짝을 지어 있다.
‘자처초연(自處超然)’과 ‘대인애연(對人靄然)’이 첫째 짝이다. 스스로 처신함에 ‘초연’하고, 남을 대함에 ‘애연’하라는 말이다. 자신을 돌보고 행동함에 있어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욕망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 첫째 가르침이다. 다음은 남을 대할 때 온화하게 하라는 것으로 풀이되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자신의 속내를 먼저 그대로 드러내지는 말라는 뜻으로 읽어야 할 듯싶다. 제 주장을 펴기 전에 남의 의견을 구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다음 쌍은 ‘무사징연(無事澄然)’과 ‘유사감연(有事敢然)’으로서, 일이 없을 때는 사태를 맑게 처리하고 일이 생기면 굳세게 나서서 처리하라는 뜻이다. 원리와 원칙이 맑지 않아 행동해야 할 때 올바로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개인은 물론이요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도 적지 않음을 생각할 때, 깊이 새겨볼 만한 교훈이다.
마지막 쌍은 ‘득의담연(得意淡然)’과 ‘실의태연(失意泰然)’이다. 뜻을 이루었을 때 교만을 부리지 말고 담담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며,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낙담하거나 개탄하지 말고 태도나 기색을 예사롭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는 물론이요 개인으로서도 쉽지 않은 경지다. 그렇지만 ‘무사징연’과 ‘유사감연’의 바탕을 이루는 자세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아득한 것만도 아니다.
작게는 나 자신을 다스리고 크게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일에 충실을 기하자 할 때, 특히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며 이러한 생각을 가다듬어 볼 때, 최 부잣집의 ‘육훈’과 ‘육연’이 주는 울림이 작지 않다. ‘육훈’이 살아 있는 사회, ‘육연’을 실천하는 시민들이 요청되는 현재, 인문학자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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