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 가지 유형
문학의 세 가지 유형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5.11.25
  • 호수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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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시나 소설 작품을 향유하는 데 있어서도 문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다.

문학이란 예술의 특성에 대한 사전지식이 약간이라도 있어야, 감상의 폭과 깊이가 풍성해지면서 우리가 작품으로부터 얻는 바도 커지게 마련이다. 문학작품을 계속 다양하게 감상하다 보면 나름대로 깜냥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기에는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든다. 보다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산물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그러한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자 할 때 문학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첫 단계가 사실 매우 어렵다. 어떠한 대상이든지 ‘A란 무엇이다’라는 형식으로 그 실체 혹은 본질을 규정하는 일은 무척 곤란하다. 대상이 자연의 소산이라 해도, 단 하나의 예외만 생겨도 잘못이 되기 때문이다. ‘까마귀란 (…) 까만 (…) 새이다’라는 규정을 두었는데 어느 날 돌연변이에 의해 하얀 까마귀가 생겨나면 문제가 된다. 인간의 산물이 대상이 되면 사태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경우, 대상에 해당되는 것들이 계속 생겨나면서 대상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지는 어려움이 더해지는 까닭이다.

문학을 규정하는 일이 곤란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해서이다. ‘문학이란 어떠한 것이다’라는 식의 규정을 내세운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문학자도 예술가여서 세상에 유일무이한 작품 곧 문학에 대한 규정들에 갇히지 않는 작품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어떤 작가가 그 꿈을 성취하게 되면, 그의 한 작품으로 인해 문학에 대한 규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 되고 만다. 해서 ‘문학이란 무엇이다’라는 식으로 문학을 규정하는 일은 실패가 예정된 작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는 좋은 방법은, 문학이 어떠한 기능을 해 왔는지,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고대 서양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대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 실체 규정적인 방법이 갖는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대상의 기능에 주목한 바 있다. 그에 따를 때 ‘만물의 근본적인 성격은 그들의 기능과 능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어서, 그 고유한 기능을 통해서만 정체(identity)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어떠한 대상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은,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어떠한 영향과 효과를 낳는지를 주목하는 것 즉 그 ‘기능’을 파악하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정치학/시학>, 삼성출판사, 1982).

문학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또한 문학의 기능에 따라 그 유형을 나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리에 설 때, 크게 세 가지 유형의 문학을 말해 볼 수 있다.

첫째 유형은 문학자가 자신을 지식인이라 여기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서 써 낸 문학작품들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작품들,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의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괴테나, 톨스토이와 같은 세계문학의 거장들에서 이광수나 염상섭, 최인훈, 조세희, 조정래, 박경리, 황석영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들 거개가 그 예가 된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를 신장하거나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일조하려는 목적으로 문학작품을 발표한다. 이러한 유형을 두고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유형은 미(美)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가형 문인들의 작품이다. 이른바 예술지상주의 혹은 탐미주의,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등에 해당되는 작품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문인들은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문학을 수단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하면서 자기 목적적인 순수 작품을 창작하고자 한다. 폴 발레리나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김동인, 이효석 등이 대표하는 이러한 유형을 ‘작품으로서의 문학’이라 하겠다.

셋째 유형은, 대중과의 소통과 만남을 지향하며 잘 팔리고 널리 읽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직업인의 윤리로 무장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SF나 추리, 호러, 판타지, 무협, 연애 등의 장르문학 작품들, 좀 더 넓게는 대중문학 일반에 속하는 작품이 그 산물이다. 에드거 앨런 포나, 아이작 아시모프, 톨킨, 스티븐 킹, 조엔 롤링, 무라카미 하루키, 듀나, 이영도 등의 작가가 주요 예가 된다. 독자의 읽는 재미를 위해 쓰인 이러한 작품 유형을 ‘유흥으로서의 문학’이라 명명할 수 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어떠한 작품도 위의 세 가지 기능 및 효과 중에서 한 가지만 전적으로 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세 가지 기능을 모두 하기는 하되, ‘주된 기능’으로 갈래를 잡아 보자면 위와 같은 세 부류로 나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어슐러 르 귄의 SF인 <빼앗긴 자들>이 냉전시대의 사회체제에 대한 나름의 탐구를 보이며 ‘운동으로서의 문학’적인 성격도 띠는 것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아일랜드의 상황에 대한 탐구의 결과도 드러냄으로써 ‘작품으로서의 문학’적인 특성만 보이지는 않는 것,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또한 모더니즘 소설미학의 중요 성취를 보이며 ‘작품으로서의 문학’적인 성격을 갖추는 것 등,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요컨대 개별 작품을 두고 보자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나 ‘심미적인 쾌감’, ‘읽는 재미’라는 세 가지를 모두 제공하되, 작품의 유형에 따라서 그 셋 중의 어느 하나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바람직한 태도는, 그 세 기능 및 효과 중에서 무엇에 중점을 둔 작품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즐기는 것이다. 대중문학을 두고 사뭇 진지하게 인간과 사회의 본성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거나, 예술가 소설을 읽으며 오락적인 즐거움을 바란다거나, 계몽소설을 놓고서 미적 쾌감을 얻고자 하면, 작품을 읽는 일이 고역이 되기 십상이다. ‘대상 작품의 특성에 적합한 감상 태도’를 적절히 취할 수 있을 때, 문학작품을 읽으며 우리가 얻는 바가 한층 풍요로워지게 된다. 문학의 세 가지 유형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문학 감상 활동을 풍요롭게 해 주리라 믿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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