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없는 대학 사회
교수 없는 대학 사회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5.12.09
  • 호수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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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시간강사법이 문제다. 내년부터 시행될 이 법에 따르면 시간강사 제도가 사라지고, 각 대학은 주당 9시간 강의 시수를 보장한 위에서 임용 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여 ‘강사’를 채용해야 한다. 이들 강사는, 사립학교법이나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의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전임교원의 지위를 인정받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와 관련된 주체들 중 누구도 이 법의 시행을 반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간강사의 고용 불안과 근무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법안을 발의한 교육부만 제외하고 그렇다. 시간강사들은 물론이요 대학과 교수들까지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시간강사 입장에서 보면 주당 9시간 시수의 전임교원이 됨에 따라 현재와는 달리 하나의 대학에서만 강의할 수밖에 없게 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수입이 줄어들기도 하는 문제가 있다. 보다 중요하게는 새로 임용되는 강사들에게 그렇게 9시간씩 강의를 몰아주게 됨으로써 현재의 시간강사 중 상당수는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시간강사 전체를 두고 볼 때, 처우를 개선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대학들 또한 반대 의사를 표명해 왔다. 대학 입장에서 보면 퇴직금과 보험료 부담의 증대가 큰 문제이다.

이에 더하여, 강사료의 인상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는 점 또한 반대의 이유이다. 교수들의 경우 그동안 행사해 왔던 강사 위촉 권한을 대학에 넘겨줘야 하는 일이 탐탁지 않을 수 있고, 강사에게 맡기기 곤란한 소수 강좌들을 떠맡아야 하는 부담도 추가된다(교수신문, 2015.10.2, 뉴스1, 2015.10.3 관련 기사 참조).

사정이 이러해서 반대 기류가 여전하다.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 시간강사의 93.9%, 전임교원 및 비전임교원의 73.5%가 시간강사법에 반대하고 있다(교수신문, 2015.11.20). 2011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이 19대 국회에서 두 차례 유예되었던 것 또한 이러한 사정에 말미암는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유예안을 발의할 국회의원을 찾는 것부터가 어렵다 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살펴지지 못한 탓인 듯싶다.

시간강사법이 문제되어야 할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의 측면이다. 현재 상당수의 대학들이 반대하는 경제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대학이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갖춰야 마땅한 교육 및 정의·윤리의 측면에서 이 법의 문제가 조명되어야 한다.

시간강사법이 교수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양산을 가속화하리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교직원 연금의 수혜 대상에서는 제외하면서 전임교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재정이 부실한 대학들로 하여금 강사를 뽑아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라고 충동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재도 비정년트랙 교원이 많은 것이 큰 문제인데 이를 악화시키는 것이 시간강사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비정년트랙 교원이란 정년보장의 대상이 안 되는 무기계약직 교원으로서, 정년트랙 교원의 40~60%의 임금을 받고 승진이 제한되어 있으며 계약 기간도 짧은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

대학이 뽑아야 하는 교원 수는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인문·사회 계열의 경우 학생 25명당 교원 1인이 있어야 하고, 자연과학이나 공학, 예·체능 계열은 20명당, 의학 계열은 8명당 1인의 교원을 확보해야 한다(법제처, 국가 법령 정보 센터). 이것은 법으로 정해진 것이므로 법치국가니 준법정신이니 등을 따지지 않더라도 지키지 않아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전임교원 확보율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2015년 현재, 종교 계열의 대학과 의학대학 및 의(공학)대 중심 대학,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 들을 제외하고 볼 때, 학생 정원 및 재학생(괄호 안) 기준 전임교원 확보율이 법정 기준을 충족시킨 경우는 서울대 131.5%(117.9%), 성균관대 118.6%(101.1%) 정도밖에 없는 실정이다(대학알리미). 그나마 성균관대도 2013년 기준 의학계열의 교수가 학생 1.5명당 1명으로 많아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이지 전체적으로 보면 열악한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성균관대학교 독립언론 <고급찌라시> 10호, 2013.4.11), 서울대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의학 계열이 5명으로 준수한 반면 공학(23명)과 예체능(21명) 계열은 법정 기준에 못 미치고 있다(2015 서울대학교 정보공시).

이러한 계열별 편차는, 전공 계열별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2011년 기준으로 볼 때 전국 대학 평균 인문사회계열은 51.7명이고, 그 외 이공학계열 40.5명, 의약계열 14.7명, 예체능계열 56.1명, 사범계열 50.8명으로 나타났다(교육통계연구센터(kedi_cesi), 2015.1).

요컨대 400여 개 대학들 대부분이 법정 기준 전임교원 확보율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실상이다. 그나마 양호한 수준의 종합대학들도 의대에 힘입어 그러한 수치를 보이는 것이니, 이른바 ‘돈이 되는’ 분야만 전임교원을 확충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다.

전임교원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더 문제적이다. 전임교원 중 비정년트랙 교원의 비중이 계속 커져서 최근 5년간 그 수가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사립대학 87개 교를 대상으로 한 최근 5년간의 현황을 보면 2011년 전임교원의 12.0%를 차지했던 비정년트랙 교원이 2015년에는 20.6%로 증가했다. 이렇게만 보면 그다지 문제적으로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그동안 신규 채용된 전임교원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확연해진다. 신규 임용자 3,167명 중 무려 69.5%에 달하는 2,200명이 비정년트랙으로 임용된 것이다(국회의원 김태년 <국정감사 보도자료>, 2015.8.29).

이상의 수치들이 반영하는 대학의 현실을 고려할 때, 시간강사법이 발효되면 대학의 교원 중 정년트랙의 비중이 급속히 낮아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교육의 질이 저하되는 것이 하나요, 대학 교원 내의 위화감이 증대되는 것이 다른 하나다. 비정년트랙의 불안정성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연구에 근거를 둔 교육 질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자의 내막이고, 대학의 교수 사회 또한 노동시장처럼 양분화되어 정의롭지 못하게 되는 것이 후자의 실상이다. 요컨대 시간강사법은 교수다운 교수를 없애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대학들이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전임교원 확보율을 충족시키도록 강제하는 식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이 행해져야 한다. 실질적으로 전임교원이라 하기 어려운 강사가 전임교원으로 산정되는 일은 엄금하면서, 대학들이 학생 수에 걸맞은 전임교원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어렵게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시간강사들 상당수를 실질적인 전임교원으로 채용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으로 돌려주어야, 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의 이름에 걸맞은 대학이 된다. 대학이 대학다워야 국가의 품격도 지켜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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