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경제 그리고 인문 정신
과학과 경제 그리고 인문 정신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6.01.01
  • 호수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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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인간의 역사라는 긴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큰 힘은 과학과 경제 두 가지이다. 과학의 발전이 끊임없이 지속되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놀라울 만큼 확충되었다는 점이나, 자본주의 체제가 전 지구를 장악하면서 세계 경제가 유례가 없을 만큼 팽창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의 진술 또한 엄연한 사실이지만 보다 중요하고도 특징적인 것은 다른 데 있다. 과학도 경제도 자신의 대상에 있어 어떠한 경계도 갖지 않게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과학도 경제도 사회의 한 부문에 불과했다. 전근대 사회에서 가톨릭이나 유교와 같은 지배적인 종교 이념 아래 복속되어 있었을 때나, 근대로 들어와서 각각 자율적인 상태가 되어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 온 때나, 과학은 과학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고 경제는 또 경제대로 자신의 영역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순수예술이나 문화, 정치 등의 다른 사회 부문들과 서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막스 베버가 밝혔듯이 근대에 들어 사회의 각 부문들이 서로 자율적으로 발전해 오는 중에, 과학도 경제도 자기의 경계 내에서 움직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세기 후반부터 상황이 급격히 달라져 왔다. 과학과 경제가 각각의 경계를 넘어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삼아 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과학의 욕망은 무한해 보인다. ‘자연과학’이라고 불려 온 제 과학들이 그 대상의 설정에 있어 자연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여러 측면과 사회의 거의 모든 국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생명과학은 인간 복제 기술까지 나아 왔으며, 뇌 과학이 인간의 정신 활동을 규명하려는 야심찬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수학이 경제 금융에 깊이 관여한 지는 오래되었다. 복잡계 물리학이 인간의 다양한 활동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과학과 기술의 복합체인 공학의 발전은 더욱 놀라운 것이다.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세상 자체를 바꾸어 놓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신세계 속의 우리들의 일상을 구석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문명사적인 전환의 지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고, 사물 인터넷과 빅데이터 기술 또한 각각 그리고 복합적으로 우리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핵이나 드론, 로봇 등에 관련된 공학의 발전이 어떠한 상황을 초래할지는 예측을 불허한다.

과학의 이러한 동향을 가능케 하는 힘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로부터 현재의 과학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으로서 ‘지적인 호기심’이다. 이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해당될 터이지만,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도 경고했듯이 빛과 그림자 모두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무한한 경계 확장을 추동하는 또 다른 힘은 경제다. 막대한 이윤을 낳을 새로운 산업의 창출을 위해 과학과 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실정이다. 과학과 경제의 관련은 다른 측면에서도 확인된다. 우주 항공 과학은 물론이고 강입자가속기(LHC) 같은 첨단 물리학 연구 시설 등도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까닭에, 과학은 순수한 연구를 위해서도 경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들어와 있다.

경제가 과학과만 연관된 것은 물론 아니다. 과학보다도 더하게 경제야말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인간과 사회의 모든 것에 관여하여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은 경제가 유일하다고 할 만하다. 이윤의 창출을 통한 자기 증식이라는 맹목적인 목적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자본은 이제 아무런 제어 장치도 알지 못한다. 다국적 기업과 국제적 투기 자본은 일개 국가나 정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현대 경제의 주도권이 실물 경제가 아니라 금융공학을 활용하며 비대해진 금융 산업에 주어져 있다는 데서 뚜렷이 드러난다. 인간과 사회의 필요에 부응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본 자체의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이러한 경제는, 더 이상 인간 삶의 한 부면이 아니고, 인간의 삶 위에 존재하는 리바이어던이라 할 것이다.

거대한 괴물이 되어 버린 경제가 우리들의 삶에 드리우는 그늘은 깊고도 짙다. 역사적으로 경제 맞은편에 놓여 있었던 문화예술이 문화산업에 편입되어 문화상품으로 변모되어 온 지는 이제 한 세기를 넘게 되었다. 정치가 돈에 휘둘리는 현상 또한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문과 교육의 장 또한 경제 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일상적인 생활과 인간관계에서 경제가 행사하는 위력은 더욱 막강하다. 부의 소유 정도가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처럼 간주되어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인간관계의 범주가 제한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은 과학과 경제의 전일적인 지배 양상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과학의 인간 해부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유적 본성을 위협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고, 경제의 만능화는 인간 삶의 다양한 국면들이 갖는 고유성 및 상호간의 차이를 말소시키고 있다. 과학도 경제도 우리의 삶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그 성과가 대단히 소중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과학과 경제가 자신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삶 전체를 규율하는 것은 재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과학적 이성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고 인간의 문화가 경제적인 척도만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이상, 위와 같은 우려는 전혀 기우일 수 없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과학과 경제에 대한, 과학과 경제 바깥에서의 사유가 절실히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바로 인간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온 인문학, 그 동력으로서의 인문 정신의 사유가 과학과 경제를 대상으로 포괄하면서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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