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

경제 성장이 없더라도 조금 못 살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길을 택해야
요즘 종종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나나 여러분들 부모 같은 기성세대가 학교를 다닐 때는 데모하면서 공부도 하고, 놀면서 술 마실 것 다 마시고, 연애하면서 대학 생활 즐길 거 다 즐기면서도, 졸업 후에는 요즘 그 흔한 토익 점수는 물론 딱히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정말이지 잘 하는 것도 하나 없이도, 다 평생직장 잡아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데, 왜 너희들은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잘 하는 것도 더 많고, 별의 별 자격증도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직장 하나도 구하지 못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왜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도대체 어쩌다가 너희들은 맨날 알바, 알바 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는지 생각을 한 번 해보자고, 합니다. 도대체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노동자들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너희들은 노동자가 시간 쪼개어 공부하러 학교에 오는 것 같은데, 왜 노동자가, 노동자가 될 사람들이 경영에 대해서보다는 노동에 대해서 배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도 합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사회는 잘못된 걸까요?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입니다. 우리 모두 잘 살기 위해 노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같이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나만 잘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사회 체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근대 시민 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고 말하는 게 옳겠죠. 정치적으로는 근대 사회가 오면서 개인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싸웠고, 그 결과 상당 부분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권력층들로부터 빼앗아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정치 민주화지요. 그런데 근대 사회에서도 경제에 대한 자유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인류는 모두가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삶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경제의 평등과 민주화를 외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결국 경제도 실패하고 정치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절대 유일 체계가 되면서 사람들은 돈으로 만든 바벨탑 쌓기에만 골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공동체의 삶의 질을 계발하거나 향상시키기 위해 협동하는 것에는 별로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기에는 근대 경제학이 제시하는 성장이라는 잘못된 정의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경제학이 만든, 경제 발전 즉 성장 신화에 사람들이 빠져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게 된 겁니다. 그 경제학에 의하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그 위에 공장이 들어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도 경제 발전 즉 성장으로 계산됩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는 상태가 유지되면 경제 발전이 안 되는 것이고, 핵발전소가 자리 잡은 바다의 물을 먹는 물로 만들어 생산해내면 경제가 성장하는 것으로 계산되는 겁니다.
아픈 데가 없어 병원에 가지 않으면 성장이 되지 않지만, 아픈 사람이 많이 생겨 의료비 지출이 늘면 국내총생산 증가로 잡히는 거지요. 저 어렸을 때처럼, 늦은 밤에도 누구든 안심하고 집에 돌아가면서 휘파람도 불고, 노래도 하면서 가는 삶은 경제 발전이 안 되는 것이고, 강력 사건이 많이 발생해 방범 방호 산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또한 경제 발전으로 계산됩니다.
IMF 위기 때 한 번 늘어난 노숙자가 줄어 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청년 노숙자까지 생겨나도 재벌 대기업은 인건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국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래서 결국 해외에 투자한 공장에서 생산력이 늘면 그것도 국가 경제의 성장으로 잡히는 겁니다. 그런 경제는 아무리 성장해도 그건 결국 ‘고용 없는 성장’일 뿐인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 진실을 모르는 채 그 대열에서 탈락한 스스로를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습니다.
열심히,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정도로 노력해 보았느냐, 라는 본질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실을 호도하여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게 들립니다. 소수의 재벌이 성장해 그 나라의 평균 소득이 상승하는 그 국내총생산이라는 것은 결국 다수를 제물로 삼아 만드는 비인간적, 비윤리적인 것이라는 헛된 신화를 깨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신화에 중독되어, ‘내 탓이오’를 외치면서 삽니다.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잘못 믿는 겁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삶, 경제 성장이 없더라도, 조금 못 살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지금 당장 우리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그 성장의 신화와 싸워야 합니다. 그 신화에서 깨어 나와 모두가 함께 가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신자유주의에 이렇게 순식간에 당하리라 누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올 봄엔 우리 모두 보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이 보는 것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 둡시다. 우리가 같이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향해 함께 싸우면 그 세상은 꼭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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