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글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6.02.24
  • 호수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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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 소장

 

희망도 꿈도 없어진 시대…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예전에 어떤 일본인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듯하다. 한국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면 무조건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말부터 한다거나, 운전하다 교통법규에 걸리면 면허증을 내놓기보다는 변명부터 한다고 한다.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이 되면 재수가 없다고 여기거나 한국인은 집단 속에 숨어서 자기를 보호하는데 능숙하고 어떻게든 출세하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겨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99년이니까 벌써 18년이 넘었다.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과연 이 책에서 지적한 부분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당시에도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이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반성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지금 느끼는 것은 그때보다 더 악화되었으면 악화되었지 개선된 부분은 별로 없는 듯하다. 특히 운전을 하다보면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잽싼 끼어들기와 차선 위반, 갓길 주행 등을 통해 남보다 먼저 간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전 기술이 좋다는 자부심까지 느끼는 듯하다. 이제 방향지시등을 켜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다.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은 나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남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아쉬울 때만 깜박이를 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깜박이를 켜면 뒤의 차가 더 속도를 내서 차선 변경을 못하게 하는데 내가 왜 깜박이를 켜나요? 귀찮아요. 신경 쓰고 싶지 않거든요.”
전철을 탈 때 나는 아직 경로석에 앉을 만큼 나이가 들지는 않아 경로석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늘 일반석 쪽으로 간다. 내 머리는 완전 백발이어서 전에는 가끔 노인으로 오해받아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전철 안의 풍경이 바뀌어 갔다.

과거에는 노인이 타면 일반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리를 양보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모른 척이라도 했다. 딴 곳을 보거나 잠자는 척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지나니 혹시 그 사람이 속으로, ‘경로석이 있는데 왜 여기에서 얼쩡거리나’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괜히 그 사람이 불쾌해 하는 것 같고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부터는 또 다른 세상이 되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모두 손바닥 안의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주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쩌다 늙은이, 아니 어느 누구와 눈이 마주쳐도 사람들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다. 마치 창밖의 풍경처럼 그저 지나치는 사물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에는 자기가 내릴 역이 다가오면 미리 문 앞으로 나와 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역에 도착해서야 일어난다. 그러고는 앞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치우듯이 내린다.

전철을 나서면서도 내 불편함은 계속 된다. 아침 출근길 전철 출구 입구에는 전단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받지 않는다. 됐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내가 받으니 그 분이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다. 이걸 받아주는 것이 복 받을 짓인가? 내가 그렇게 좋은 일을 한 걸까? 오히려 추운데서 고생하시는 분이 복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가만히 보니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이 여럿일 때는 줄을 서서 나눠주는데 여기에도 서열이 있어 아무나 제일 앞에 서지 못하는 모양이다. 앞에 선 사람은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전단을 건네지만 뒤에 서서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은 다소 주눅들은 표정이다.

앞에서 말한 책은 한국에서 80년대부터 기자생활을 한 일본인이 쓴 것이다. 계층 유동성이 점점 줄어들어가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장에 갈 가능성이 있었고 계층 상승도 꿈꿔볼 수 있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더 적어졌다. 공부를 잘하려면, 정확하게 말하면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출신부터 좋아야 한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한다고 아무나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아니고 좋은 대학에 가도 아무나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정규직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희망도 꿈도 없어진 시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 특히 청년에게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곳은 세상과, 또한 사람과 연결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핸드폰뿐이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없애주는 게임뿐이다. 핸드폰을 할 때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글도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글로 보일지 모르겠다. 편견이라고, 부분을 전체로 확대해석한 극단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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