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지역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고 사람 그 자체가 사람을 만든다
출신 지역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고 사람 그 자체가 사람을 만든다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6.04.06
  • 호수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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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교수(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바꿀수 없는 속성으로 단정 짓고, 규정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권에서 부는 바람이 세상을 심란하게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치에 신경 끊고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고, 그것이 바란 삶도 아니다. 정치라는 건 세상이 피치 못하게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의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양보도 하고, 협잡도 하고, 보복도 하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충돌이 날 것을 막아 큰 난리가 나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한다. 그러니 누군들 어느 정당이 하는 일이 모두 다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양보하지 않고 싸움을 회피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 한국 정치권의 가장 큰 화두는 호남지역을 놓고 야권이 빚어내는 갈등일 것이다. 호남에 대한 진정성 없는 구애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지만, 그것도 정치를 해나가는 과정 중의 일부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긍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일어나다 보니, 예기치 않은 흐뭇한 일들이 간혹 생긴다. 난, 페이스북(facebook)을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로 잘 활용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직업상 하루 종일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 머리를 좀 식혀야겠다 싶으면 그곳에 접속하여 10분 15분 씩 놀고 나오곤 한다. 내 페이스북은 예의 정치 논객들이 많아 정치 관련하여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감정의 들끓음이 매우 역동적으로 표출되곤 한다. 며칠 전 어느 날 아침 두 개의 포스팅이 나를 흔들었다.

페이스북 친구(이하 페친) 한 사람은 대학 이후 줄곧 서울에서 살아오고 있지만, 나고 자란 곳은 대구다. 그는 서울에 와서 지역감정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을 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그런 걸 심각하게 들어본 적도, 영향 받아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87년 대선 때 지역감정의 뜨거운 맛을 봤고, 그 뒤 그의 고향 사람들과 술 먹다가 광주 이야기가 나오면 결국 소리를 지르거나 술자리를 깨고 나오곤 했다. 그리고 지역 차별을 하는 고향 친구들을 경멸하기 시작했다. 그는 누가 어디 출신인지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는데, 그건 그 출신지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라 했다. 나중에 우연히 누가 어디 출신인 것을 알고 보더라도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지녀왔던 그에 대한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했다. 그런데 그 스스로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호남인들의 아픔을 모르는 영남 패권주의에 속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했다. 속에 천불이 날 이야기다.

나는 그와 딱 반대의 경우다. 전라도에서 고등학교까지 나고 자란 후 서울 갔다가 인도 갔다가 부산에서 산 지 26년 되었다. 대학이 민주화 운동으로 들끓던 90년대 초반 나는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518을 겪었다는 - 직접이든 간접이든, 난 당시 대학 2학년이었다. - 사실 하나로 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기여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주변에서 나를 광주 출신이라고 하는 점을 추켜세울 때 은근히 즐기기조차 했다. 경상도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전라도 사람들이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나는 지역감정의 피해자가 아님에도 마치 엄청난 피해자인 것처럼 코스프레 했다.

또 한 분의 페친은 이렇게 말했다. 80년 부산 남포동에서 작은 술집 하나를 운영했는데, 종업원 한 아이가 괜찮아서 정도 붙이고 마음도 주고 하여 모든 걸 맡겼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금고를 털어 현금을 다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전라도 사람이었다. 그 뒤 그 페친은 전라도라 하면 이를 갈고 무조건 미워하고 험담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한 일 년 쯤 뒤, 초량 어느 공사장 앞에서 갈 곳이 없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물어보니 전라도 출신이었다. 페친은 그를 데려갈 수 있었는데도, 데려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오로지 딱 한 가지. 그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거. 그리고 그 뒤 세월이 35년이 더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페친은 그 일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훈훈하다. 그런데 난, 부끄럽다. 고향 광주에서 친구들의 배웅을 받고, ‘독한 마음’을 다지고 부산행 고속버스를 타고 처음 부산으로 들어온 이후 26년이 지났지만 난 단 한 번도 이곳 부산에서 지역 차별을 당해 본 적이 없다. 누구는 내가 대학교수라서 지역 차별을 겪지 않았을 뿐, 지역 차별은 뿌리 깊게 있다는 말을 한다. 전반적 사실이 어떻든지 간에, 난 지역 차별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난 내 자식 둘이 모두 경상도 출신이라는 걸 너무나 뿌듯해하고 안심하였다. 비겁하다. 이보다 더 이상 비겁할 수는 없다. 참으로 부끄럽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교회 다닌다고 다 그런 사람이지도 않고 절에 다닌다고 다 이런 사람이지도 않다. 부모가 이혼했다 해서 다 그런 사람도 아니고, 여자라고 해서 다 그런 사람도 아니고, 백인이라 해서 다 그런 사람도 아니다. 사람이 하늘이라고까지 한 사람도 있다. 사람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도 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는 속담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그가 출신지와 같은 바꿀 수 없는 어떤 속성 때문에 단정 지어지고, 규정되고, 일반화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할 일이다. 호남을 이렇다 저렇다 마음대로 재단하고, 규정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호남 사람들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정치에서는 혹시 더러운 방식으로 이길지는 모르지만,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추하고 역겨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출신 지역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고 사람 그 자체가 사람을 만든다. 출신 지역이 아닌 사람을 존중하는 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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