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 새 출발의 계기
선거 - 새 출발의 계기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6.04.27
  • 호수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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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교수 창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정치 과잉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고유한 가치가 보다 존중되는 쪽으로 발전해 나가야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지금은 그 뒷수습이 한창이다. 선거는 언제나 많은 정신적, 심리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사회와 나라의 진로를 정하고, 크고 작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답을 어떤 사람 하나에게 던지는 표로 구해야 하는 만큼 계산과 생각이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선거의 결과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이권과 권력이 워낙 커서 누구나 승패에 매달리게 된다. 그 관심의 정도는 어떤 스포츠보다 강하다. 그리고 정치가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아 우리나라는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치 과잉의 나라이다.

사회적인 영역은 물론 순수 학문에까지 정치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역이 거의 없다. 그러니 선거에 직접 관련되는 정치인과 주변 사람들은 말할 나위 없이 누구나 승패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만큼 소모되는 정신적, 심리적 에너지는 크게 마련이다. 그런 에너지 소모는 사회의 건강한 유지를 위해서 필수적이다. 귀찮다고, 더럽다고, 관심 없다고 그 노고를 외면하는 순간 사회는 제 갈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무관심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해도 선거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저 투표가 최고의 의무라는 당위만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시킨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중대사가 진지한 고민거리가 아니라 마치 광고의 카피처럼 순간에 사람의 관심을 사로잡는 도구로 전락하는 데에 있다. 그런 현상은 선거가 달아오를수록 심해진다. 진지한 논의는 간 데 없고 문제의 선정성과 표를 얻기 위한 상품가치만이 남는다.

그러다 표와 직접적인 연관에서 멀어지기라도 하면 아무리 큰 문제라 해도 이내 관심과 논의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 안에 얼마의 피눈물이 묻혀 있는지 상관없이 말이다. 글을 쓰는 지금 당장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피해자가 당한 고통은 참으로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폐 세포가 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산모와 아이들의 그 참혹한 고통과, 그렇게 사람이 죽어나가도 그저 기업의 이윤만 생각하는 탐욕에 몸서리가 난다.

그런데 사실의 전모는 이미 5년 전에 거의 드러나 있었다. 이런 문제가 도무지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관심사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이제 와서 보상금을 준다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는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편을 가르는 일에서는 그렇게 쉽게 흥분하고 끈질기게 집착하지만 인내를 요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공부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멀리 갈 필요 없이 그동안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각종 대형 안전사고들과 그 이후의 대처가 어떠했는지를 보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가 환멸만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꼭 만족스러운 결과 때문이 아니다. 결과로 따지면 선거는 언제나 절반 이상의 불만을 동반해야만 한다. 지지하는 정파의 절반 이상은 언제나 지게 마련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당과 파가 어지럽게 갈리는 곳에서는 결과를 놓고 도무지 어디에서 만족을 찾아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선거의 승패가 갈렸다고 해서 우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긍정적인 면을 갖는다. 과정이 민주주의 원칙에 합당하게 이뤄졌다면 승자든 패자든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사람마저 일단 선거의 결과를 기점으로 어떻든 새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비록 강제된 경우라 해도 새로 출발하는 곳에는 언제나 기대와 희망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마 민주적 선거제도가 갖는 가장 큰 강점이자 활력일 것이다. 이점에서 민주주의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류가 시행한 정치제도 중 가장 최선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새삼 선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우선 70, 80년대 독재 시대를 경험한 입장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선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다. 물과 공기와 같이 민주주의는 그것이 보장되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의 고통은 물밖에 난 고기와 꽉 막힌 공간에 갇힌 새의 고통이다. 이런 기본권의 차원에서 한걸음 나아가 선거는 삶의 주인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는 본질을 깨우쳐 주는 계기가 되는 점에서도 매우 뜻깊다. 선거가 끝나고 난 다음에 당사자와 사회과학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선거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다. 그것은 당연한 노력이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는 인문학자의 눈에 그런 인간적인 해석의 경계를 넘어 어떤 섭리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는 면을 지닌다. 매번 선거의 결과를 보노라면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정작 이루는 것은 사람의 손 안에 있지 않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일의 주인인 양 행동하지만 궁극적인 주인은 결코 사람이 아니다. 이것을 의식하다 보면 평상시에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안에 있는 양 자신 있게 재단하고 심판하던 건방진 마음이 저절로 조심스러워진다. 선거는 이런 겸손의 기회를 제공하는 점에서 또한 고맙다.

거기에 덧붙여 선거는 일종의 연극적 효과를 주는 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이다. 사실 선거판에 쏟아져 나오는 갖가지 요소들은 매우 노골적이고 거칠다. 자리와 권력에 대한 탐욕, 그것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편을 가르고 해칠 수 있는 공격성, 어떤 고상한 가치와 품위도 자신을 가리고 치장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끌어다 댈 수 있는 위선, 그런 허세와 허영에 휩쓸려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음 등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의식에게 너무 야비하다. 정치 이야기가 사교에서 금기가 되는 이유의 큰 부분도 거기에 있다.

이런 야비함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면 개인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사회의 안정을 깨뜨릴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다. 비극의 주인공들도 이런 요소들에 의해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격정이라 규정하며 극중 간접체험을 통해 그 격정을 씻어내는 비극의 효과를 카타르시스라 칭했다. 선거는 폭력과 강제를 배제한 게임의 규칙 안에서 승패를 가리는 가운데 똑같은 효과를 수반한다. 그 면에서 선거는 사회적으로 연극과 같은 해소의 기능을 수행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제 그런 선거가 끝이 났다. 새롭게 주어진 새 출발의 기점에서 민주적 선거가 담고 있는 혜택을 최대한 살려 우리 사회가 보다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부디 우리 사회가 정치 과잉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 문제로 덜 흥분하고 각각의 삶의 자리의 고유한 가치가 보다 존중되는 쪽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최상의 정치란 본래 정치가 있는지를 모를 때’라는 말은 고금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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