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라는 슬픈 노동자 대학생을 보며
알바라는 슬픈 노동자 대학생을 보며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6.05.11
  • 호수 3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광수 교수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어깨동무를 해주는 것

대학에서 강의를 한 지 27년째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역사와 사회에 대해 토론한 적이 꽤 많았다. 리포트도 많이 내주고, 시험도 자주 치렀고, 학점도 짜게 주었다. 엄하게 가르쳤다. 그러한 교수 방식을 지금은 쓰지 않는다.

나이가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아량을 베풀어 준 것이 작은 이유가 되긴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학생들이 대거 ‘알바’ 전선에 나가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1997년 소위 IMF 사태 이후 비정규직이 이 땅에 확산되고 만연되면서 강력한 대학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인데 가끔 학교를 나오는 청년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학생들인데 학업보다는 노동에 더 전념해야 하는 청년들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헷갈릴 때가 있다.

어떤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대학을 다녀야 하고, 소질에 안 맞지만 대학을 다녀야 하고,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알바 때문에 공부를 할 시간이 없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그냥 생각 없이 살고,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고, 등록금이 너무 비싸고 학교 하는 짓이 도저히 마음에 안 들지만 그냥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알바만 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알바를 하는 이유는 잡다하게 많지만, 그 결과는 동일하다. 집에 돈이 충분하여 어렸을 적부터 공부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커 나온 아이들은 지금도 공부에 전념을 하면서 미래를 가꾸고 있고, 어렸을 적부터 집안이 곤란한 아이들은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지금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자는 서울로, 정규직으로 취업을 할 가능성이 크지만 후자는 지방으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금 수저와 흙 수저의 차이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거나 이미 공부에 흥미를 붙일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을 한 번 해보자. 기성세대로서 말이다. 한국 역사 최초로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못사는 그런 세상을 우리 어른들이 그 아이들에게 물려줬으니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차원에서 생각을 한 번 해보자는 말이다.

그들보고 투표장에 나와야 한다는 것, 그들보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것, 그들보고 사회악에 맞서서 나서야 한단 것, 모두 그들의 입장에 서서 볼 때는 허탄한 남의 말일 뿐이다. 여전히 제 버릇 개 주지 못하는 남을 가르치려는 태도요, 팔구십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꼰대들의 잘난 체 일뿐이다.

그들은 당장 생존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누가 나선다고 그의 인생을 책임져 줄 것인가? 항차 일제에 버텨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의 자손들도 돌보지 않고, 그 시대 그 일제에 빌붙고 아부하여 권력을 차 자손대대로 부귀와 영화에 존경까지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 노동자-농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 계층 간에 균형이 있어 착취가 없는 사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사회, 민족이 함께 가는 사회, 경제가 발전해 골고루 잘 사는 사회…이 모든 사회는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노동자-농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층 간에 균형이 있어 착취가 없는 사회를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뽐낸다. 전자는 사회주의적, 진보적이고 후자는 봉건주의적, 보수적이다. 전자가 우위에 서는 것은 그들이 후자에 비해 희생적이고, 도덕적일 때는 가능할 수 있다. 그렇지만 후자가 더 희생적이고 도덕적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후자가 더 우위에 서야 한다. 그런데도 전자는 후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난, 레닌이 간디보다 사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더 우위에 선다고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레닌을 주장한 사람들은 간디를 주장한 사람들에게 봉건적이라고 비난한다. 그건 아니다. 나는 간디주의자도 아니지만, 내가 간디주의자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주장에 대해 진영 논리로 비난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사회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포부를 심자는 것도 아니다. 알바라는 슬픈 노동을 해야 하는 그 곤궁한 대학생들에게 ‘알바 그만 하고 공부해라’라든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든가,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든가 하는 말부터 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말이라는 것이 특히 금언이나 속담이라는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어른들이 살아왔던 때를 생각하여 그 때 통용되었던 그 의미로 지금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자는 것이다. 날개에 상처 입고, 멀리 날아야 할 꿈마저 잃어가고 있는 그들에게 미안해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에게 공감하며, 그들과 함께 그 고민을 같이 풀어가기 위해 어깨동무 해주는 것이다. 작은 것이 있어 큰 것이 만들어진다.


  • 서울특별시 구로구 공원로 70 (대한산업안전협회 회관) 대한산업안전협회 빌딩
  • 대표전화 : 070-4922-2940
  • 전자팩스 : 0507-351-7052
  • 명칭 : 안전저널
  • 제호 : 안전저널
  • 등록번호 : 서울다08217(주간)
  • 등록일 : 2009-03-10
  • 발행일 : 2009-05-06
  • 발행인 : 박종선
  • 편집인 : 박종선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보현
  • 안전저널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본지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Copyright © 2025 안전저널.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hkim@safety.or.kr
ISSN 2636-0497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