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설계 때부터 통합방재전략 구축해야
건축물 설계 때부터 통합방재전략 구축해야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0.10.13
  • 호수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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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 초고층 화재, 해법은 무엇?
지난 1일 발생한 부산 해운대구 우신골든스위트 화재를 계기로 초고층 건물 화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화재사고는 우리나라의 초고층 건물에 대한 허가 절차와 소방 기준, 진화 여건이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초고층 건물이 급증하고 있는 현 상황을 볼 때 시급히 제도적으로 개선·보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연속적인 대형사고를 불러올 것이라는 걸 전망케 했다.

본지는 저명한 화재전문가인 이수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산업대학원 원장(안전공학과 교수)의 자문을 얻어 초고층 건물에 대한 방재 대책의 현 상황, 개선사항 등을 짚어봤다.


◇ 초고층 건물 현황

도심권 고층 건물(11층 이상)은 2000년대 들어서 급증하기 시작해 현재(10. 8.13 기준) 전국적으로 83,725개소(50층 이상 또는 높이 200m 이상 초고층 건물 : 125개소)에 이른다.

하지만 관리방안이 부재한 채 건물의 수만 늘어남에 따라 화재사고 역시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이 6일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11층 이상 고층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2007년 2,399건, 2008년에 2,592건, 2009년에 2,410건으로 모두 7,401건이었다. 31층 이상 초고층 건물의 화재 발생 건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이 역시 2007년 32건, 2008년 35건, 2009년 57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 초고층 화재 왜 위험한가?

우리나라에서 초고층 건물 화재의 위험성을 알린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971년 12월25일 발생했던 서울 충무로 소재 대연각 호텔화재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서울시내 모든 소방관이 투입됐고 군용 헬기까지 동원해 진화 작업에 나섰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2층 커피숍에서 시작된 불은 1시간 30여분 만에 21층까지 집어 삼켰고, 결국 163명의 사망자와 68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이처럼 초고층 화재가 큰 피해를 발생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초고층 건물의 특성에 있다. 초고층 건물 내에 있는 엘리베이터, 전기 파워샤프트, 공조 덕트, 배관 등의 수직연결공간은 초고층 건물의 높이에 비례하여 연돌효과(건물 내·외부 공기기둥의 밀도와 압력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를 내 연소범위의 확대를 불러 온다. 또 공조시스템이 다양한 방식으로 운전돼 제연이 어렵기 때문에 연기와 유독가스가 급속도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 아울러 플래시오버(Flash over : 급격한 연소 확대가 실내 전체로 번지는 현상)가 발생하면 고온의 열과 압력에 의하여 창문이 파괴되고, 이때 분출된 화염과 고온의 연기가 상층 창을 파괴해 화재를 쉽게 상층으로 전파시키기도 한다. 특히 고층부의 경우 강풍에 의하여 화염이 몰아쳐 연기가 복도 측으로 밀려들게 되고 이로 인해 연소가 확대 될 수 있다.

피난 및 소화활동 관점에서도 구조용 사다리차의 도달 한계로 인해 진압과 구조, 소화 작업에 많은 제약이 있다. 또 근접동선이 매우 길어 화재 통보와 방수개시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밖에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호텔, 백화점 등의 경우 이용객들이 피난로를 인식하지 못해 피난시간이 지체되면서 다수의 인명피해가 초래된다.

◇ 미흡한 초고층 화재 대응 능력

현재 우리나라 초고층 건물에 대한 허가기준과 소방기준, 화재진압 여건은 부실하기 그지없다.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위주로 살펴보면,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건물 허가기준이 허술하다는 것이다.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20~25층 단위로 방재시설을 갖춘 대피층을 설치하고 화재 시 위나 옆으로 번지지 않는 구조를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세심한 허가 기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31층 이상 건물에 대해서만 대피시설을 만들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을 뿐 11층 이상 30층 이상 건물에 대해서는 사실상 피난층 등 대피시설의 설치를 강제하고 있지 않다.

건물 내 갖추어진 화재 진압 시설도 부실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번 사고를 보면 자체 내에 설치된 소방시설이 허술한 것이 화재를 키우는데 큰 몫을 했다. 겨우 각층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사실상 유일한 방화 수단이었던데다 문제가 된 4층 피트층은 설치대상도 아니었다.

아울러 초고층 화재 진압을 위한 소방장비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소방차에 탑재돼 있는 고가사다리는 13층까지만 미치기 때문에 초고층 건물의 화재진압에 있어선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화재진압용 헬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야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다목적 헬기 26대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특히 1t 이상 급수능력을 갖춘 헬기는 일본의 10분의 1인 7대에 불과하다.

현재 초고층 건물의 유지관리 시스템 체계가 빈약하다는 것도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시설물 센서진단 기술은 화재 등 비상 상황의 대응을 신속하게 하는 것은 물론 건물의 운영, 유지관리 등에서 활용성이 매우 높은 중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런 인프라는 국내에서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 통합적인 안전관리 필요

초고층 건축물 화재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건축물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화재 대응단계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건축, 소방 등 유관기관간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통합적인 안전관리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고층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연기이동경로 및 피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등을 적용한 성능 위주의 소방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건축물의 관리에 있어서는 지능형 통합방재 기술을 도입하여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소방서의 상황실과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평소에는 건물내 소방시설 등의 이상 유무를 파악ㆍ점검을 할 수 있으며, 화재 시에는 소방서로 자동 신고가 되어 신속한 화재진압이 이루어 질 수 있게 한다. 특히 피난 시 사용 가능한 엘리베이터 등을 안내함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어 대피를 수월케 한다.

아울러 건물 내 사각지대가 없도록 스프링클러 설치 법규도 강화돼야 한다. 이번 화재사고의 경우 상가와 주거공간 사이에 있는 배관시설 전용 공간인 피트층에는 현행 규정상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화재가 커지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

그리고 위에서 지적했듯 초고층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는 물대포형 소방헬기 등 맞춤형 장비도 꾸준히 늘여야 한다.

초고층 건물의 허가절차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허가 단계에서부터 안전성 검토 절차를 강화해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면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

이밖에 ▲화재대응 매뉴얼 작성 및 대피훈련 정례화 ▲피난용 외벽 엘리베이터 도입 및 피난층 설치 ▲불연성 건축자재 사용 의무화 등도 제도화 돼야 한다.

◇ 선진국의 초고층 화재 대응 수준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초고층 건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초고층복합빌딩 화재위험도 평가체계 구축’, ‘화재안전 설계·제도 적용’, ‘화재성상의 예측과 평가를 위한 종합 방화프로그램 개발’ 등 재난방지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또한 연소·내화 분야에서는 구성재료의 연소․내화특성 D/B를 구축해놓는 한편 연소·내화 예측 기술, 소화설비 예측기술, 연소 독성가스 평가기술 등에 대한 연구개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피난안전 분야에서는 피난행동특성 및 피난시간 예측기술, 연기․온도 예측기술 등을 개발해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화재안전 기술을 축적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초고층 화재 진압에 있어 기초적인 장비나 제도적 보완 사항을 시급히 마무리 짓고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초고층 화재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항구적인 초고층 화재 예방체계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 정부 “종합안전대책 세울 것”

이번 우신골든스위트 화재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대대적인 초고층 건물 화재예방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소방방재청은 고층건물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현재 민관 합동점검단과 함께 이달 말일까지 고층건물 안전관리 실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정부는 내달 중으로 초고층 건물 종합화재안전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정부는 불연성 외부마감재의 설치와 대피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강제할 수 있도록 법령 강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현행 건축법(2009. 7.16 시행)에서 50층 이상 또는 200m 이상 초고층건축물에 대해 최대 30층 마다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토록 한 것을 50층 이하의 고층건축물에도 ‘피난층 또는 피난공간’이 마련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적극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지금 현재도 서울 용산·상암·뚝섬, 인천 송도, 부산 등지에서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이 속속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도시로의 집중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을 볼 때 초고층 건물의 등장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현 시점에 이에 대한 제도적, 시설적인 안전관리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거대한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정부와 관련 유관기관 및 단체 등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그간의 방재대책 수립 형태를 벗어나 이제는 미래를 내다보는 방재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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