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을 위하여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을 위하여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6.06.08
  • 호수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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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최전선에서
자기 몸으로 떠안은 사람들을 기억하길 바라며


잠을 잊고 책을 읽었던 흔치 않은 경험 중에서 아직 잊지 못하는 것은 처음 삼국지를 읽었을 때다. 삼형제의 도원결의와 함께 시작되는 수많은 전투와 영웅담에 홀딱 빠져 어느새 동이 터온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오로지 영웅호걸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과 창에 수많은 적군들의 목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고 전투가 지나간 자리에는 ‘시산혈하(屍山血河)’가 남는다는 말들이 호기로워 보였다. 전투 흥미의 절정을 이루는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신묘한 계책에 걸려든 조조의 ‘100만’ 대군이 타죽고 빠져 죽어 대패했을 때는 귀추를 궁금해 하던 긴장이 일순 확 씻기는 통쾌함을 맛보았다. 어릴 때는 그런 숫자와 표현들이 영웅호걸을 말할 때 의례 따라붙는 수사(修辭) 정도로 여겨졌다.

그때는 권투 경기도 아주 좋아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는 물론 외국의 유명한 선수들의 중계도 거의 빼놓지 않고 봤다. (글을 쓰는 중 마침 무하마드 알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가 캐시어스 클레이였다가 무하마드 알리가 된 다음에도 참 열심히 그의 경기를 보았다.) 한참 보다 보니까 어느새 권투를 보는 눈이 생겨 공이 울리고 처음 몇 번의 펀치가 오가는 것을 보면 대번에 그 선수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최고 수준의 선수만을 찾았고, 이기는 선수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긴 선수의 뒷이야기들은 신이 나서 빠짐없이 챙겨 읽었다. 로마의 시민들이 검투사의 경기에 빠져 흥분했던 것과 흡사했다고나 할까. 하긴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고백록』에서 검투사의 경기를 끊기 어려웠음을 고백할 정도였으니 검투의 마력은 거의 본능적이리만치 강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점차 맞아 쓰러지는 선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권투 경기를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권투를 보는 눈이 이렇게 바뀔 때쯤 되자 삼국지에 나오던 당연한 수사들도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숫자’에 가려 있는 그 많은 군사들은 어디에서 온 누구였던가? 그들이 죽어 쓰러진 ‘시체가 산을 이루고, 흘린 피가 내를 이뤘다’는데 얼마나 참혹하고 끔찍했을까? 이렇게 시각이 바뀌니 서양 문학 최고의 고전이라는 『일리아스』도 그저 위대한 영웅담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절세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그저 흠모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좌충우돌 들이치는 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는 장면들은 재미있다기보다는 처절했다. 절친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반미치광이가 된 아킬레우스가 도망치는 트로이 군사들을 도륙하여 그 죽은 시체가 트로이 성 밖 스카만드로스 강을 막아 흐르지 못하게 했다는 대목은 역겹기까지 했다.

물론 이것은 당시의 인류 발달 상황에 비춰 자체로 하나의 자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다른 인간의 부속물이나 처리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무엇보다 죽어가는 각자가 개체로서의 존재 가치를 전혀 확인 받지 못하고 그냥 ‘무리’, ‘더미’ 속에 휩쓸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이름도 없이 죽어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 인간의 삶이 꼭 덧없는 연기와 같다. 아마도 모든 인간이 두려워하는 가장 큰 불행은 이러한 허망함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도 덧없는 허무의 포로에서 벗어나 영원한 기억에 들기도 한다. 두보의 유명한 6편의 율시 <삼리삼별 三吏三別>은 그 점에서 인류사의 가장 탁월한 업적 중의 하나일 것이다. 거기에서 두보는 전란에 시달리는 백성을 숫자로 뭉뚱그려 휩쓸어 담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난에 주목한다. 그 중 「신혼의 이별 新婚別」의 한 대목 “출정하는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냄은 / 길가에 버리는 것보다 못하답니다. / 머리 묶고 아내가 되었지만 / 그대의 침상 자리 따뜻할 새도 없이 / 저녁에 결혼하고 새벽에 이별을 고하니 / 너무나 총총한 게 아닌가요?”(『당시선』 이병한, 이영주 역해, 서울대출판부 361쪽)라는 대목은 지금 읽어도 생생하니 가슴이 저리다. 「늙은이의 이별 垂老別」도 마찬가지다. 다 늙어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자손들 모두 전사했거늘 / 어찌 이 몸 홀로 온전할까? ... 늙은 처는 길가에 엎드려 우는데 / 세모에 입은 옷이 홑겹이다. / 이번이 사별일지 어찌 알리요? / 추위에 떨 일이 또 마음 아프다. … 쌓인 시체로 초목들 비릿하고 / 흐르는 피로 내와 언덕 붉다. / 어디메가 낙토(樂土)리요? / 어찌 아직도 서성거리는가? 오막살이 살림이나 막상 버리자니 / 덜컥 폐와 간이 무너지는 것 같구나.”(같은 책 365 이하) 두보의 이런 표현에서 비로소 ‘시산혈하’를 이루는 전쟁의 와중에 이름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평범한 백성 하나하나의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의 이름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두보의 시선에 의해 시가 된 이래 그들 삶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시선,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단순하게 말하여 기억하는 것이 이렇게 위대하다.

그러면 두보와 같은 시선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저 속절없이 잊혀져 허무로 증발해 버리고 마는 것일까?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고난과 시련은 피할 수 없고 그 최전선에서 때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때로는 무기력하게 그저 당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가 많았을 텐데 그 모든 게 다 허망할 뿐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강점기 후쿠오카 감옥 혹은 만주의 731부대에서 기록도 없이 희생된 이들, 일제의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가 희생된 이들, 그리고 해방 후 한국전쟁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희생된 많은 이들의 삶의 끝이 그저 허망한 망각일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나라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증언해 준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국가와 민족으로서의 자존을 생각할 수나 있겠는가! 그 점에서는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 해서 누구 하나 예외일 수가 없다. 아니 부족해서 당해야 할 고통과 고난이 컸기 때문에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그 고난과 고통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남양주 지하철 공사 사고, 곡성 공무원의 죽음 등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희생된 이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최전선에서 자기 몸으로 떠안은 사람들이다.

이 모든 이들의 희생을 생각하며 마음의 작은 꽃 하나를 바친다. 그들의 삶이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저편 영원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판에 뚜렷이 새겨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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