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n분의 1을 말하자
먼저 n분의 1을 말하자
  • 정태영 기자
  • 승인 2016.07.08
  • 호수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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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언론중재위원

 

서로에게 채권과 채무가 없는 평등한 만남의 즐거움을 느껴보길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던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식당의 위치와 약도를 보냈는데 마지막 낯선 한 줄이 날 당혹케 했다. 사족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런데 계산은 n분의 1’이라고 덧붙인 것이다. 이런 약속 통지는 처음이어서 순간 여러 생각이 오고갔다. 나는 그 친구와 만나면 내가 밥값을 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을 터다.

그 사족이 없었다면 우리는 카운터 앞에서 서로 지갑을 빼들고 승강이를 벌였을 거고,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냈을 거다. 계산대 앞에서 익숙하면서도 늘 어색한 그 풍경, 외국인의 눈에 가장 한국적 장면으로 비치는 것 중 하나다.

최근 서울의 한 식당에서 ‘각자 계산 불가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내가 먹은 건 내가 낸다는 생각이 퍼지고 주머니가 얇아지면서 더치페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빙하기도 바쁜 식사 시간에 손님들이 카운터 앞에 긴 줄을 서니 식당 주인이 견디다 못해 내건 것이다. 댓글은 당연히 식당 주인을 비난하는 쪽이었다. ‘열 명이 가서 열 테이블에 앉아 먹읍시다’라는 댓글이 압권이었다.

우리 사회에도 더치페이(국립국어원은 우리말 ‘각자내기’로 갈음한 바 있다) 분위기가 확산되는 건 사실인가 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식당에서 카드로 결제한 건수는 2009년 약 13억 건에서 2013년 26억 건으로 늘었는데, 반대로 결제 한 건당 평균 액수는 4만 원에서 3만 원으로 줄었다고 한다. 혹자는 인정 많던 한국 사회의 변화가 씁쓸하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더치페이나 n분의 1 계산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기업의 모바일 간편 결제 앱들도 더치페이에 수월하다고 홍보한다. 한 사람이 몰아서 계산을 하고나서 분담액을 말해주면 상대의 계좌를 몰라도 클릭 한 번으로 내 몫을 보낼 수가 있다. 더치페이 계산기 앱들도 많이 나왔다.

그래도 더치페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특히 친구나 지인, 연인, 상사나 부하, 갑과 을, 직무 연관성이 있는 사람끼리의 식사 자리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김영란 법이 시행되면 더치페이가 더 많아질 거라고 예상하지만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들끼리의 식사 자리에서 과연 더치페이하자는 말이 나올까, 의구심이 든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더치페이가 좋다는 대답이 늘 압도적이지만 현실은 배반한다. 누군가가 먼저 말을 하거나 암묵적 합의가 있으면 불편하진 않지만, 그 말을 먼저 꺼내기는 껄끄럽다. 그 자리의 최고 상사나 좌장으로서, 또는 그 자리를 주선한 사람으로서 n분의 1로 계산하자고 먼저 운을 떼는 건 체면 구기는 일이다. 행여 좌중의 누구라도 “오늘은 000께서 사시는 거죠”라고 농담조로 말하면 “어, 그래 많이들 먹어”라고 가슴 쓰라리지만 호기를 부릴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데이트 비용은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남녀공통으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막상 여성이 더치페이를 하면 ‘개념녀’ 라는 소리를 듣고 남성이 더치페이를 하자고 하면 ‘찌질남’으로 보일까 저어된다고 한다. 의식과 행위가 엇갈리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단면이다.

서양에서는 식사를 초대하고도 더치페이를 하고 같은 동양권인 일본에서도 더치페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적 모습인데, 왜 우리 사회에서만 여전히 어려운 일인지 각자 한번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더치페이나 n분의 1 계산이 인간관계에서 염치 없는 행위일까, 나를 찌질한 사람으로 만드는 걸까, 사람들이 정말 나를 그렇게 생각할까, 오히려 편하고 고맙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을까. 우리 고유한 풍습에도 ‘추렴’이란 게 있었다. 체면상 내가 내야 할 상황 같은데 호주머니 사정이 안 돼 핑계를 대고 혼밥을 먹는 일은 얼마나 스스로도 초라하고 비루한가.

특히 나이 든 남자들이 더치페이에 소극적인 것은 돈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걸 점잖지 못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 중에 환경 전문가로 일하다 퇴직한 후 가끔 자문이나 기고, 심사를 하는 걸 보람으로 여기며 사는 친구가 있다. 그가 이렇게 푸념한 적이 있다.

“부탁을 하는 사람은 시간이 되겠냐고 공손하게 청한다. 하지만 정작 보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다.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데 사실 그 놈의 체면 때문에 입이 안 떨어진다. 상대가 용건과 함께 보수를 말해주고 가능한지 물어봐주면 좋겠다. 보수가 너무 적으면 적당한 핑계를 대고 거절하고 내 체면은 체면대로 지킬 수가 있는데. 나중에 입금된 액수를 보고 솔직히 자존심 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걸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할지 모르겠다.”

공짜밥은 사는 사람이나 얻어먹는 사람이나 최소한 심리적으로라도 대가가 따른다. 얻어먹은 사람은 잘 잊어버리지만 산 사람은 치부책에 기억하는 법이다. 언젠가는 그게 부메랑이 되어 관계를 해칠 수도 있다. 음식점들도 각자 내는 걸 눈총 주면 안 된다. 인건비도 절약해주는 메뉴 자판기 설치도 한 방법이다. 내 밥값 내가 내는 걸 무슨 권리로 막는다는 건지.

나는 약속을 앞둔 친구의 n분의 1 통보가 일견 정이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선제적 지혜와 용기가 가상했다. 익숙하지 않았던 더치페이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점도 고맙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는 불편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이 왠지 편안했다. “다음에는 내가 살게”라는 기약할 수 없는 말이나 “덕분에 잘 먹었어”라는 의례적인 표시를 안 해도 되었다. 마치 서로에게 채권과 채무가 없는 평등한 기분이랄까. 앞으로도 그 친구를 자주 그렇게 ‘쿨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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