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산업 안전보건팀 정성효 차장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품위를 한층 더 고양하는 것이 바로 信義
스위스의 영토는 알프스 산맥의 척박한 불모지에 있습니다.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7만 불에 이르는 선진국이지만 중세의 스위스는 생산의 기반이 전혀 없어서 살아갈 방도가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의 젊은이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파는 용병 생활을 했고, 스위스 용병은 충직하고 용맹스럽기로 유명했습니다.
1792년 8월 프랑스 혁명군에게 프랑스 왕궁이 포위됐습니다.
성을 지키던 프랑스 군대는 모두 도망쳐 버렸고, 황제와 황후를 지키던 스위스의 용병 786명만 끝까지 왕궁에 남았습니다.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을 익히 알고 있던 혁명군 대장은 그들을 회유하려 했습니다.
“이보시오 스위스 용병! 성을 지키던 프랑스 군인들도 모두 도망쳐 버리고 아무도 없소.
이제 당신들에게 급료를 줄 사람도 없고, 이곳은 당신네 나라도 아니니 프랑스의 일은 우리 프랑스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그냥 스위스로 돌아가 주시오. 우리는 당신들을 해치고 싶지 않으니 성문을 열고 나오면 그냥 보내 주겠소...”
“...”
잠시 침묵하던 스위스 용병대장이 비장하게 뜻을 전했습니다.
“이보시오! 우리는 스위스 용병이오.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우리를 고용한 사람들을 위험 속에 버리고 가버린다면 우리 후손들은 이제 용병으로 존재할 가치가 없어질 것이오. 이곳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신의이니 물러가지 않을 테면 어서 공격하시오.”
결국, 끝까지 성을 지키던 스위스 용병 786명 전원이 옥쇄(玉碎)한 다음에야 혁명군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들이 목숨을 다해 보호했던 그들의 고용주 루이 16세 황제와 마리 앙투아네트 황후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 그날의 일을 기리기 위해 새긴 조각이 바로 ‘빈사의 사자상’입니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작은 공원의 자연암에 나타난 용맹스러운 사자는 심장을 창으로 관통당하여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에도 고용주인 부르봉 왕가의 백합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가슴으로 품어 보호하고 있고, 그 머리맡에는 스위스 국기의 방패가 놓여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처럼 마치 자연암 속에 원래부터 들어있던 사자를 끄집어 낸듯한 생생한 모습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고, 마치 지금도 살아서 신음하고 있는 듯한 사자의 처연한 모습이 보는 이들의 깊은 심금을 울리며 슬프고도 숙연한 감동을 줍니다.
‘빈사의 사자상’이 그날 전사한 스위스 용병들의 용맹과 신의를 온 세상이 영원히 기억하도록 했고, 그들의 희생은 스위스인들이 용병 생활로 살아갈 수 있는 반석이 되어 격동하던 중세 유럽에서 약소국이던 스위스가 건재하게 했던 하나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스위스 용병은 세계 최고의 용병으로 인정받아 로마 교황청의 근위병은 스위스 출신의 젊은이만 임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스위스는 선조들의 신의와 희생 그리고 성실성, 도전정신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만년설로 뒤덮여있던 황무지 돌산 융프라우에 산악열차 설치 공사를 기적적으로 성공시켜 온 나라를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었고, 신의(信義)에 바탕한 은행업과 정밀기계분야 등에서 최고의 인프라를 갖춘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있습니다.
200여 년 전 786명의 성실(誠實)한 인간이 목숨을 다한 신의(信義)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지켜냈던 ‘슬프고도 감동적인’ 대서사시를 자연암에 각인한 ‘빈사의 사자상’은 인류 최고의 걸작품 중 하나입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사람은 믿음(信)과 의리(義)가 없이는 일어서기가 어려운 존재이니 모든 일에서 신의(信義)를 지킬 때 존립(存立)할 수 있으며, 그 신의(信義)의 근본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유천하지성(唯天下至誠)
자기신뢰(自己信賴)는 성실(誠實)에서 기인하며, 성(誠)은 말(言)을 이룸(成)이니 모든 언행(言行)에 지극한 정성(精誠)을 다할 때 신의(信義)에 이를 수 있습니다.
- 논어(論語) 12편 무신불립(無信不立), 중용(中庸) 제23장 유천하지성(唯天下至誠) -
영화 곡성(哭聲)에서 유행한 시쳇말 ‘뭣이 중한디?’에 대한 답은 바로 ‘신의(信義)’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품위를 한층 더 고양하는 것이 바로 신의(信義)이며, 신의는 모든 언행에 지극한 정성(精誠)을 다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인품(人品)입니다.
사람 간에 믿음과 의리의 격조(格調)가 존재하는 아름다운 인격(人格)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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