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영 한국화재보험협회 특수진단팀장
1970년대 초 연이어 발생한 대연각 호텔 화재, 서울시민회관 화재 등 대형 화재는 국가 차원의 정책수립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이때 국민의 고귀한 인명과 재산을 보전하는 한편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관이 필요하다는 시대적인 요구도 일어나 화재안전을 사명으로 하는 전문 방재기관들의 탄생을 이끌었다. 그 후 3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화재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사명을 최고의 가치로 내걸고 탄생됐던 안전전문기관들의 선구자적 노력은 국가의 위상을 안전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또 국가발전에 힘입은 화재안전기술도 세계 최고의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해 인류의 행복과 안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필요(위험관리 동기 부여), 효과(자발적), 기대되는 편안함(불안감 해소)이라는 기준을 통해 자신의 안전욕구를 채울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하고, 대책도 강구할 수 있는 자기책임의 실현이 주를 이루는 안전선진국으로 발전을 했다.
‘안전을 확보한다’는 일념 하에 서로를 끌고 밀어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취해 우리가 여기에 왜 왔고, 어떻게 이 자리에 올랐는지를 잊어선 안 된다.
그간 정부 및 민간차원에서 안전에 대한 국민의식과 사회적 풍토의 대전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전개해 왔다.
더 좋은 방법을 찾고 더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 반복학습의 효과와 비례하여 함께 자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우리의 안전불감증은 반복적인 안전사고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점이 시정되기는커녕 그 심각성이 더해만 가고 있다.
어제의 사고원인이 조사되고 분석되어 그 대책이 수립되기도 전에 우리는 그 사고를 망각해버리고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빠져버리고 있다. 즉 마치 ~인 것 같다는 ‘AS IF의 법칙’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와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주관(主觀)의 동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그 망각의 동물이라는 단점은 사고(思考)의 폭을 무한하게 하는 반면 수용은 자기유리의 편협한 면에 머물도록 한계를 두게 만들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매스컴은 Murphy’s Law를 인용, 쉽게 기억하는 유사한 사고를 끌어다가 이번 사고 역시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라고 평가한다. 마치 누군가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인데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시행하지 않아 생긴 필연적인 사고로 이끄는 것이다. 물론 이는 안전정책의 발전을 위해 채찍을 한 번 더 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명실공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가가 되기 위해 단순한 채찍 보다는 ‘이러면 더 낫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함께 해야 할 때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선진국가로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만 그 실행이 어려울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모든 분야의 과제가 해결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갖고 힘을 모으는 것이다.
새로운 물질문명의 성장과 발전은 그에 수반되는 안전욕구의 변화도 가져온다. 이런 변화에 따라 때로는 규제적인 시행이 효과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본질적인 의식의 변화가 더 큰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안전이 선행돼야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할 수 있다. 이렇게 얻어진 성장과 발전은 새로운 욕구를 불러 일으켜 또 다른 해결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현 기술단계에서의 안전문화는 새로운 단계에서의 안전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초석이 된다. 그 초석을 올바로 다지기 위한 안전전문기관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노력에 전 국민적인 관심과 참여도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 성장하는 문명에 걸 맞는 안전문화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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