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광나루 안전체험관장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낙뢰사고는 드문일이었다. 그런 연유인지‘벼락 맞아죽을 놈’이라는 욕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벼락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부쩍 늘고 있다. 어쩌면 건강관리로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인 듯 싶기도 하다.
지난 9월 5일 오후 2시쯤 서울 불암산 정자 불암정에 벼락이 떨어졌다. 정자에서 비를 피하던 등산객 15명이 화상을 입거나 충격으로 넘어지면서 타박상을 입었다. 피해자들은 “여기가 가장 안전한 줄 알았어요. 비가 많이 쏟아지니까 당연히 비를 맞지 않는 지붕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고 말했다.
한 중년여성이 정자 안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순간 벼락이 덮쳤다고 했다. 전자파가 벼락을 유도한 모양이다. 그녀는 허벅지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아프다는 신음 소리만 낼뿐,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이게 웬 날벼락인가’라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몇 년 전에도 벼락이 등산객을 덮치는 사고가 일어난 바 있다. 2007년 북한산 용혈봉에 오르던 등산객 12명 중 쇠줄 손잡이를 잡고 오르던 3명과 바위에 있던 8명이 죽거나 다친 것이다.
등산객들이 기본적인 안전지식을 알고 있었더라면 이러한 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높은 산 속 정자에서 비를 피하려는 생각은 스스로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번개 치는 날 산속 정자는 마치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쇠줄을 잡는 것이나 바위에 서있는 것도 위험하다. 쇠줄은 번개를 유도할 수 있고, 바위는 낙뢰전류가 쉽게 흐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번개를 만나면 몸을 낮추고 번개를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물에 젖어 있으면 감전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에서 바닥에는 무언가를 깔아 놓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
또한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의 전압은 수억 볼트로, 직접 맞지 않아도 나무나 등산용 지팡이를 거쳐 반경 50미터 이내의 사람들을 감전시킬 수 있다. 등산용 스틱이나 우산 같은 물건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벼락 칠 때 가장 위험한 곳은 큰 나무 밑이라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수액(樹液)이 전도체이기 때문에 나무 밑에 있는 것은 폭풍우 속 수영장에 있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6년간 한 해 평균 120만 여회의 낙뢰가 발생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이 심화됨에 따라 낙뢰 횟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낙뢰로 인한 사망자 수도 2005년 4명, 2006년 11명, 2007년 23명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 전기 설비가 많은 시설물에서 발생한 낙뢰가 가장 많지만, 등산, 골프 등 여가생활에서 발생하는 낙뢰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골프의 경우 아무것도 없는 넓은 필드에서 쇠로 된 골프채를 들고 있다면 그만큼 번개가 떨어질 확률이 높은 것이다.
벼락은 소나기구름이 급상승, 세찬 빗방울과 마찰을 일으켜 정전기를 일으킬 때 발생한다. 전압이 1억v가 넘고 번개 둘레 온도는 태양표면 온도의 3배에 가깝다. 그런 벼락은 무소불타(無所不打)로 어느 곳에 떨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는 너무나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에 맞설 수 없다면 피해야 한다. 가급적 태풍이 올 때 바깥 출입을 삼가고, 부득이 야외에 있는 경우 번개를 유도할 수 있는 물건을 지참하지 말고 지형이 낮은 곳으로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지금 하늘을 보니 서쪽에서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비가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오늘은 적중한 것 같다. 모두의 안전을 위하여 등산로 정자에 피뢰침을 설치해야 한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려 본다. 악마의 눈썹이 눈앞에 어른거려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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