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사회는 없다
노인을 위한 사회는 없다
  • 승인 2017.02.20
  • 호수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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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가끔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댁을 찾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유난히 나를 눈에 넣으시고, 졸업 후 이 날까지도 관심 있게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 대한 도리요, 학생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함이다.

선생님 댁은 말하자면 1970년대 초에 지어진 번듯한 양옥 2층 건물이다. 서울의 단독주택들이 대부분 그렇듯 산비탈을 따라 언덕길을 끼고 돌아, 석조 계단을 10여 개 딛고 들어서면 좁기는 하지만 철따라 피는 꽃들과 곱게 가꾸시는 푸성귀들로 가득 찬 정원이 있다.

다시 댓돌 위에 신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서, 또 목조 계단을 10여 개 올라가야 선생님의 생활공간인 거실과 침실이 있다. 준공 당시에는 주변에 별로 높은 건물도 없어서,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파란 하늘과 발 아래 산 어귀의 푸른 숲, 그리고 정원의 푸르름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뿌듯해 하셨던 이 건물이 최근에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몇 년 전 댁을 찾았더니, 항상 문을 열어주시던 사모님이 보이지 않으셨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여쭤봤더니 아뿔싸! 집으로 들어서는 계단에서 낙상을 하셔서, 두 무릎 관절과 고관절까지 훼손되어 수술과 재활치료를 위해 몇 개월째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라 하셨다. 한편 사모님이 안 계시니, 여든이 훌쩍 넘으신 선생님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젊은 시절에는 인왕산으로 북한산으로, 주말 등산을 한번도 거르신 적이 없던 선생님도 연세가 드시니 양쪽 무릎 모두 관절염이 생기셨다. 마트를 한 번 갔다 오려 해도 한 손에 물건을 들고, 지팡이를 짚고 골목길 계단을 올라, 정원 안의 계단을 또 올라, 집안 계단을 다시 올라야 당도하는 거실! 젊을 적에는 전혀 문제없이 오르내리던 정겹고 안락한 집이었건만, 나이가 드니 그것 하나하나가 모두 생활 속의 장애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시력 저하와 평형감각의 상실이다. 내 발 앞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고, 발에 걸리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쉬운데다가, 잘못 넘어지면 후유증으로 고생한다니! 수술을 한다 하더라도, 젊을 때와 달리 근육이 쉽게 재생되지 않으니까 장기간의 요양과 재활치료가 불가피하고, 더욱이 이 기간 동안 심장이나 순환계에 혈류 과다가 지속되면, 심한 경우 사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들의 약 절반은 낙상 후 1년 내에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사망한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낙상은 어르신들에게 매우 위험한 사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여든을 넘어 나날이 연장되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쪽에서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라고 하니, 너 나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천수를 누릴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사회적, 기술적 급변으로 예순도 되지 않은 나이에 직장에서 내쫓기다시피 하여 사회에 나앉게 되는 세상이지만, 변변히 노후를 준비해 놓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아직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생애 두 번째 직장을 찾게 되는 것이 우리 시대 대부분의 근로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산업현장에서 낙상을 예방하는 것은 어느 산업재해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건 일흔 고령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제로 노화는 누구에게나 이미 마흔 전후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숨은 복병이다. 몇 가지 요령은 있다. 첫째는 장애물을 치운다.

문지방과 같은 턱은 없애고, 계단도 없애고, 돌출부도 없애야 한다. 둘째, 있는 장애물은 눈에 잘 띄게 만든다. 주변 조명도 더 밝게 하고, 돌출부는 눈에 띄는 색깔로 칠하여 누가 보더라도 식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는, 언제라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손잡이와 난간을 설치한다. 난간은 나이가 어리든 많든, 안전한 걸음마를 위해 매우 중요한 위험예방 수단이다.

집을 팔고 문턱이 없는 현대식 아파트로 이사하시라 몇 번 권유해 드렸지만, 금년 가을 재개발이 된다니 그 때까지는 가지고 있어야 다만 얼마라도 집값을 보존할 수 있다는 말씀에, 그건 접기로 했다. 자손들을 위하시는 마음 씀씀이까지 내놓으시라 할 수는 없으니까. 대신에 지난 번 선생님댁을 방문했을 때에는 집안 곳곳의 조명을 바꿔 드렸다. 갑갑한 조명을 벗어나 만족스럽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선생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부디, 가을까지는 불상사가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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