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근로자들이여 세상 밖으로 나서라"
"산재근로자들이여 세상 밖으로 나서라"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0.03.24
  • 호수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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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근로자 이상용 씨

 

때늦은 함박눈이 전국을 뒤덮은 3월의 어느 날. 이상용(47)씨는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데도 불구하고 론볼 경기장 점검에 나섰다. 경기장으로 가는 진입로가 얼진 않았는지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려갈 배수관은 괜찮은지를 꼼꼼히 살폈다. 그가 이처럼 이 경기장에 정성을 다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산재근로자와 충북지역 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체육공간을 만들겠다며 그가 지인들과 함께 수년에 걸쳐 노력을 한 끝에 만들어 낸 소중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산재근로자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산재의 고통을 풀 곳이 필요해

지난 2003년 인천대공원에서 열린 산재근로문화제. 이상용씨는 충북 산재근로자 대표들 중 하나로 이 대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때 한 산재근로자가 그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장애인들에게 알맞은 스포츠인 론볼을 하고 있는데 살고 있는 청주에는 론볼 선수가 드물고 관련 시설도 없어 서울까지 와서 활동을 하느라 힘들다는 것. 이 하소연은 당시 한국산재노동자협회 충북지역본부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던 그에게 하나의 목표를 만들어 주었다. 론볼과 같은 스포츠가 활성화 된다면 산재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즉시 뜻이 맞는 이들을 모아 선수발굴과 함께 경기장 건립을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수년에 걸쳐 충청도청과 충주시청을 번갈아가며 관련 공무원을 만나 그 필요성을 설파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올해 충주에 론볼과 테니스 등을 할 수 있는 장애인 전용 경기장이 들어서게 됐다. 이씨는 이제는 많은 산재근로자들이 이곳에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또 산재로 인한 고통을 풀길이 없어 지독한 마음고생을 했던 자신의 지난날들도 주마등처럼 그의 뇌리를 스쳐가고 있다.

무리한 작업으로 인해 사고나

IMF로 전국이 휘청이던 1998년. 이상용씨는 충북 충주에 소재한 마그네틱 테이프 등 각종 산업용 필름을 생산하는 S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당시 회사 분위기는 구조조정설과 인력감축설로 흉흉했고, 직원들은 좀처럼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3일에 한번 꼴로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예민해진 직원들간에 사소한 다툼도 빈발했다. 사고가 났던 2월 10일에도 그랬다. 플랜트정비부서 소속이던 이씨는 필터프레스 배관 정비 작업과 관련한 인원배정 문제로 출근을 하자마자 작업반장과 다투었다. 반장이 주요 업무를 제쳐두고 타 부서의 공정을 돕는데 금일 작업인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이었다. 직접적인 말은 없었으나 타 부서의 일까지 도움으로써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심산이었던 셈이다. 이에 그는 그럴 순 없다고 반발했고, 결국 다툼 끝에 혼자서 정비과의 본 업무인 배관 정비작업에 투입됐다. 1조 10명이 투입돼서 하는 일을 혼자서는 할 수 없었기에 그는 차량운수과에 부탁해 한 신입직원을 차출, 함께 작업에 나섰다. 그렇게 무리하게 나선 작업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3m 높이에 위치한 배관의 나사를 조이다가 스패너가 튕겨 나가는 바람에 바닥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만 것. 그 사고로 인해 그는 척추신경 손상을 입었고, 결국 다시는 두발로 걸을 수 없게 됐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산재근로자 위한 삶 살고파

고통으로 뒤덮인 병원생활을 하던 그에게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함께 병원 생활을 하던 산재근로자 두 명이 퇴원을 하고 밖에서 만나 한날한시에 자살을 한 것. 산재로 인한 가정불화, 외로움 등 많은 고민을 안고도 마땅히 털어놓을 곳이 없어 고민했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이런 문제들이 그들뿐만이 아니라 자신과 모든 산재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산재근로자들이 서로를 독려하고 고통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다짐했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이런 그의 노력은 점차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고, 그는 한국산재노동자협회 충북지역본부 본부장, 충주시 장애인 체육회 부회장 등에도 선임됐다. 그리고 현재는 산재근로자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들이 체육활동을 통해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론볼․테니스․탁구 등의 장애인 선수발굴과 육성을 주로 하고 있다. 이상용씨는 앞으로도 산재근로자들이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그의 열정이 세상 곳곳에 퍼져 많은 산재근로자들이 다시 웃음을 찾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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