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광나루 안전체험관장
필자가 강남소방서 구조진압과장으로 근무할 때이다.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 속에 상황실로부터 서초동 지하상가 화재사고의 출동지령을 받았다. 먼저 도착한 소방진압대원의 무전교신에 화재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감을 직감하고, 나도 급히 순찰차로 출동했다. 직원들이 모두 출동한 상태였기에 운전은 의무소방원에게 시킬 수밖에 없었다. 의무소방대원의 운전경험이 부족하여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강남소방서 차고를 나와 삼성사거리를 지나려는데 빨간 신호가 들어왔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1분 1초를 다투기 때문에 “모든 차량은 정지하라”는 방송과 사이렌을 울리면서 신호를 무시하고 이동했다. 사거리를 거의 지나갈 무렵이었다. 대부분의 차량은 모두 정지했는데, 승용차 한대가 1차선에서 파란신호를 보고 빠르게 달려오는 것 아닌가. 나는 위협을 느끼고 차를 정지하라고 소리쳤다. 우리차가 서는 순간 승용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겨우 10센티미터 남짓한 간격으로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모면했다. 충돌했으면 큰 사고가 날 뻔은 자명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아찔했던 일이었다.
현장에 도착 했을 때 화재는 신속한 조치로 진압된 상태였다. 급히왔다 해도 큰 도움이 될 일은 아니었다.
“급할수록 천천히 하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우리나라는 2008년 OECD 회원국 중 자동차 1만대 당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제일 높다고 할 정도로, 법질서 준수 수준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을 멤돌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의 1만대 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9명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을 2.2배 웃도는 수치라고 한다. 그야말로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교통 후진국’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자랑하면서도 기초질서의식은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교통의식 수준이 전체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교통 에티켓’이 선진국 진입의 기본으로 여겨지는 만큼, 운전자들 스스로 ‘나쁜 운전습관’을 버리는 게 시급한데 이것이 아직까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 ‘나쁜 운전습관’의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항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끔 한다.
먼저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진입로에 길게 늘어선 줄을 피해 옆 차선을 달리다 새치기하듯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또 달리다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하는 운전자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변경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주위에서 이렇게 운전하는 사람이 있어 왜 그러냐고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한 차선으로 가기에는 너무 따분해서 차선변경을 자주 한다”는 당황스러운 답변이 나왔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 운전자는 양보에도 미흡하다. 다른 차량이 내 앞으로 끼어들면 기어코 그 차량을 앞질러야 속이 시원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영업용 차량들은 다른 이들에게 양보를 잘 해주지 않는 것은 물론, 곡예에 가까운 과속운전을 하면서 옆의 차들에게 위압감을 주기도 한다. 앞서가야만 운전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세 번째로 이기적인 운전습관 중 대표적인 것 하나로 교차로 꼬리물기가 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난해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시행했지만, 그 때에만 약간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출퇴근 시간에는 교차로 중앙을 막고 있는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 운전자들은 다른 운전자들에게 욕을 먹는 것보다 3~4분 빨리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한국인들은 경제성장 못지않게 운전도 급하게 한다. 그리고 이 조급함은 위의 3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위의 ‘나쁜 운전습관’들을 버리고, 나부터 교통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수밖에 없다.
자신을 생각하는 만큼 다른 이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교통사고는 줄어들 것이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는 말이 오늘따라 매우 큰 교훈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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