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교과정에 ‘안전교육’ 커리큘럼 도입 필요
“저희들은 항상 빨리 배달을 가야 하잖아요. 바쁘나 안 바쁘나 똑같아요. 신호를 무시하더라도 빨리 가야해요. 특히 배달이 많을 때는 마음이 더 급하니까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살필 틈도 없이 그냥 가는 거죠”
이는 2009년 진행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청소년 안전 실태조사에서 한 오토바이 배달 근로자가 한 말이다.
최근 잇따른 피자배달 근로자들의 사망사고로, 우리 사회에선 청년 배달근로자의 안전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다행히 이 문제의 경우 유명 피자업체들이 ‘30분 배달제 폐지’를 약속하면서 현재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로 촉발된 청소년 및 청년 근로자의 안전문제는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게 사실이다. 범정부 차원의 정확한 실태조사는 물론이고,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려는 사회적 논의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 속에 최근 청년유니온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서비스연맹이 ‘청년·청소년 근로자 안전보건 실태와 제도개선 토론회’를 개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토론회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제기한 청소년 및 청년 근로자의 안전실태와 개선안 등을 정리해봤다.

◆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
이번 토론회에는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과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노무사, 이종필 청년유니온 팀장,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노무사 등이 참석했다.
이들 참석자들은 각종 조사 등을 통해 파악한 우리나라 청소년 및 청년 근로자의 안전보건 실태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기준으로 24세 이하 근로자가 전체 사고성 재해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9%로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등 유럽 15개국의 평균(2003년 기준 16.4%)보다 약 10%P 이상 낮은 수준이다.
사고성 사망자도 비슷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유럽 15개국에서 평균적으로 8.9%의 사망자가 24세 이하에서 발생되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사고성 사망자의 2.56%가 24세 이하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는 재해위험이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년 및 청소년 근로자들의 사고와 사망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신범 실장은 “어린 근로자들의 경우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데, 이들 중 상당수가 산업재해로 집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는 근로복지공단으로 산업재해보상신청이 접수되어 승인된 건수만 통계에 집계된다”면서 “만약 자동차 보험으로 사고를 처리한 경우 산재통계에서는 집계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2008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고성 산업재해 중 교통사고 재해의 연령별 분포를 살펴보면, 18세 미만의 사고성 재해자수가 186명인데 이중 교통사고 재해자수는 150명으로 전체의 80.65%를 차지했다. 18세에서 24세의 경우는 전체 사고성 재해자수가 3,329명인데 이중 교통사고 재해자수가 939명으로 전체의 28.21%를 차지했다. 드러난 수치가 이 정도인데, 이들 토론자의 의견이 사실이라면 청년 근로자의 사고 실태는 매우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목장갑’ 하나 달랑 끼고 작업해
이수정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노무사는 네트워크에서 조사한 ‘청소년노동자의 노동환경 실태보고’를 토대로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이 노무사가 공개한 실태조사에는 오토바이 배달과 택배물류창고, 영세 제조업 공장 등에서 근무했던 청년 근로자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담겨있었다.
사례1. 오토바이 배달을 했던 정수(가명)군은 배달하는 동안 아찔한 순간이 많지만 사업주나 소비자에게 ‘욕먹지 않고’ 빨리 배달하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는 건 다반사라고 했다.
이처럼 정수군이 위험한 질주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배달할 사람이 없어서다. 가맹점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는 중소영세업자들 중 상당수가 이익을 내기 위해 2~3명이 감당해야 할 일을 한 사람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2. 야간에 택배물류창고에서 물류 상하차 작업을 했던 은혁(가명)군은 손이 빨려 들어가거나 레일에 찍힐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일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안전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고 다만 ‘장난치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상하차 작업은 레일을 통해 끊임없이 내려오는 무거운 물건들을 분류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다. 게다가 밤을 꼬박 새우며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중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성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은혁군은 이런 위험을 알고 있음에도 청소년 입장에서 쉽게 벌 수 없는 일당 5~6만원의 ‘목돈’을 주기에 이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례3. 동원군은 문짝을 만드는 공장에서 저녁 8시부터 아침 10시까지 총 14시간을 일했다. 본드와 신나 냄새가 가득한 환경이었지만 사업주는 그에게 달랑 목장갑 하나만 주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본드와 신나 등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장은 근로자들에게 마스크와 안전장갑 등의 보호구를 지급하고, 사업장에 환기구 등의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동원군은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고지 받은 적도 없었다고 한다.
이 노무사는 “안전한 노동환경을 갖춘 일자리가 청년 근로자에게 열려 있지 않아 이들이 안전교육이 없고, 보호장구도 지급되지 않는 사업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라며 “이런 사각지대 속에서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근로자의 부주의로 귀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 청년 근로자 안전, 무엇이 문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청소년 및 청년 근로자의 안전이 취약한 근본적인 이유로 이들을 근로자로 잘 인식하지 않는 사회현상을 꼽았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근로자가 아닌 잉여인력의 하나인 아르바이트(알바)로만 인식돼 노동인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사회적 인식부터 변화해야함을 우선 지적했다. 이들에 의하면 이미 청소년 및 청년 근로자들은 당당히 노동인권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노동시장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2003년 고용노동부의 표본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등학교 36,825명 가운데 22.1%인 7,969명이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7년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조사결과와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의 조사결과에서도 15세~19세 청소년의 아르바이트 경험률이 각각 21%, 19.3%로 나타났다. 사실상 우리나라 15세~19세 청소년 5명 중 1명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20세~24이하 청년 근로자들의 경우는 그 비율이 더욱 높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청년들 중 68.8%, 즉 10명 중 거의 7명이 파트타임 근로자로 살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청년 및 청소년 근로자는 단시간, 단기간만 일을 해 별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중 상당수가 법정 하루 노동시간인 8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점을 고려할 때 청년 및 청소년 근로자 또한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필 청년유니온 팀장은 “청소년과 청년들 중 상당수가 근로자로 참여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제 더 이상 이들의 안전문제를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축소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청소년 근로자 특별 보호 규정 있어야
김신범 산업위생실장 = 향후 개선방안에 대해 김 실장은 어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김 실장은 사업주와 동료 근로자들이 청년 및 청소년 근로자들을 알바생이 아니라 근로자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성인에게 적용되는 모든 안전보건법률 및 근로기준법을 어린 근로자들에게도 모두 적용해야함은 물론 이들을 특별히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신체·정신적 발달의 과정에 있는 청소년 근로자들의 특성을 감안해 이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작업에는 종사할 수 없도록 가이드라인을 법적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 실장은 초·중·고 교과과정에 안전보건교육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직업훈련원에서 안전교육을 의무화할 것과 청소년과 청년들이 소속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인정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수정 노무사 = 청소년 노동 관련 법의 개정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 첫 단계로 이 노무사는 최저임금이 현실화돼야 함을 주장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청소년의 노동에 대해 ‘용돈 벌이’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사업주들이 청소년 근로자를 값싸고 부리기 쉬운 노동력쯤으로 여기다 보니 저임금 실태가 되풀이 되고 안전관리도 허술하다는 게 이 노무사의 설명이다.
이 노무사는 또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대상 사업장이 확대되어야 하고 상시 감독도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노무사는 “현 고용부의 근로감독이 겨울과 여름에 중점적으로 실시되고 있는데, 이미 특정한 시기에 상관없이 청소년 노동력이 활용되고 있음을 감안해 상시적으로 청소년 고용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 노무사는 법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고용노동부 각 지방노동청마다 청소년 근로자 전담 부서를 마련하는 등 정부가 청년 및 청소년 근로자들의 안전보호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성규 노무사 = 현행 법령이 청년 및 청소년 근 로자를 보호하기에 미흡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8세 미만인 자’를 ‘도덕상 또는 보건상 유해·위험한 사업’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사업은 고압작업 및 잠수작업, 교도소 또는 정신병원에서의 업무, 소각 또는 도살의 업무, 유류를 취급하는 업무(주유업무 제외) 등이다.
유 노무사는 해당 법령이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위험하거나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업종들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청소년 노동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업종의 문제점’에서 기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업주의 자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단지 업종에 대한 규제만을 규정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청소년 고용 사업주에 대해서도 제한이나 자격조건이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김신범 실장과 마찬가지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청소년 근로자에 대한 특별 보호 규정이 존재하지 않음도 지적했다.
유 노무사는 “청소년 근로자 대부분이 취업 경험이 적은 미숙련 근로자라는 점에서 취업 초기 업무상 사고나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채용시 교육 규정부터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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