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광나루 안전체험관장
요즘 고의로 불을 지르는 화재사건이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다. 방화원인으로는 불만해소와 가정불화가 가장 많고 정신이상, 비관자살 요인도 있다. 이같은 방화는 전체 화재에서 무려 10%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했던 강동소방서 관내에서도 방화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10년이 지났으니 2000년으로 기억된다. 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에는 어김없이 불이 나서 출동을 하곤 했다. 반경 1km이내의 범위에서 방화범이 남몰래 불을 지르면 우리는 출동해서 불을 끄기 바빴다.
이러한 야간 화재 출동은 수 개월간 계속됐다. 검게 그을은 현장을 목격했을 때 맥이 빠지고 허탈감마저 느꼈다. 화물차, 승용차, 봉고차의 유리창을 깨고 방화를 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멀쩡한 차량에 불을 냈고, 주택의 계단 구석이나 지하 귀퉁이에 옷가지나 폐지 등을 모아서 불을 질렀다.
방화사건이 수개월 지속되자 소방서에서는 방화범을 잡기 위해 야간 순찰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찰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더니 주민의 신고로 결국 방화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방화범은 29세의 젊은이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왜 불을 질렀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불이 활활 타고 있는 것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불을 지르러 다닌다는 것이다. 1년 전에 지방에서 이같은 방화를 하다가 감옥살이를 한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얼마 전 3억의 현상금이 걸렸던 산불 방화범 ‘봉대산 불다람쥐’가 경찰에 붙잡혔다. 1995년부터 16년간 울산 동구 일대 봉대산과 마골산, 염포산 일대에 모두 93차례 불을 질러 산림 55헥타르를 폐허로 만들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금전문제 때문에 가정불화를 겪자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불을 질렀다고 한다. 불을 내면 마음이 후련하고 편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최근 방화사건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추세이다. 연구에 따르면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은 방화를 통해 희열을 느낌과 동시에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2002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기 신변을 비관하거나 사회적 분위기에 억눌려 지내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또는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방화를 저지르는 일이 종종 있다.
방화범들은 재범률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을 무서워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몇몇 방화사건에서 보듯이 그들은 불을 희열의 한 매개체로 보고 있다. 이러한 방화는 사회적 파급력이 상당하다. 다른 이들이 이것을 보고 따라하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방화범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물론 초범자들의 재발 방지를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 화재에 대한 근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방화범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심적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고 숭례문을 불태운 방화범은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을 자신의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가져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가. 재산적 손실과 국민들의 정신적 피해는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행동들이 남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방화범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체계적인 관리를 펼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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