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최선을 다할 때 의미 있어
"삶은 최선을 다할 때 의미 있어
  • 연슬기 기자
  • 승인 2010.02.24
  • 호수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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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근로자 박수학 씨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태백중앙병원. 이곳에는 1970·80년대 광업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광부들이 상당수 환자로 입원해 있다. 한때 한국경제를 짊어지고 힘차게 갱내를 누비던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노쇠한 노장이 되어 병원 한 켠에 외롭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오랜 광부생활로 생긴 진폐증은 이들에게 사실상 시한부 인생을 선고, 인생의 마지막 시간마저 어둠 속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박수학(69)씨도 이런 환자들 중 한 명이다. 청춘을 다 바쳐 일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기침을 자아내는 진폐 뿐이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열심히 살았고 남은 인생 역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기에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30년 광부 외길

 

박수학씨는 1966년 태백에 있는 G산업에서 광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 셋이었다.그때만 해도 광업이 주목을 받던 시기였고, 보수도 좋아 광부는 인기 직종 중 하나였다. 때문에 비록 일 자체는 힘들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이렇게 시작한 광부로서의 삶은 30여년간 이어졌다. 그 사이 그는 결혼도 했고 5남매도 낳았다. 어두컴컴한 갱내에서의 노동은 힘들었지만 이를 통해 가정을 지킬 수 있었기에 그는 늘 자신의 일에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열심히 일을 했고, 그 결과 점점 더 좋은 탄광회사로 이직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천상 광부로서의 삶을 살아오던 그에게도 끝이 다가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정년을 맞은 것. 1997년 12월 31일, 박수학씨는 자신의 인생에서 광부라는 이름을 내려놓았다.

안전에 대한 뒤늦은 후회

남은 인생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던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이 느껴졌다. 가슴 통증은 갱에서 일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그때는 40도에 육박하는 지열 때문에 느껴지는 답답함이라고 생각해 갱을 벗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었다. 헌데 지금은 갱을 나왔는데도 통증이 계속 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는 의구심과 함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급기야 그는 어느 날 극심한 통증과 함께 쓰러졌다. 급히 실려 간 병원에서 그는 진폐 1종 판정을 받았다.

2003년 1월 9일. 자신을 위한 인생을 채 살아보지도 못하고 입원을 해야만 했다. 삶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으나 그래도 마음 한 켠을 파고드는 후회가 있었다. 그가 일했던 60·70년대만 해도 안전장비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돼지고기만 많이 먹으면 탄가루가 씻겨 내려간다는 속설 정도가 당시 광부들의 건강보호에 대한 인식이었다.

“왜 그때 안전에 관심을 갖지 못했나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습니다. 조금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마스크만 잘 착용했어도 진폐증을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는 말을 뒤늦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만이라도 건강하게 살자”

치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진폐증. 때문에 대부분의 진폐환자들은 희망을 잃고 그저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기 일쑤다. 하지만 박수학씨는 달랐다. 당장 내일 죽더라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세우고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먼저 평생을 즐겨 오던 담배부터 끊었다. 또 각종 재활 치료는 물론 병원에서 실시하는 클레이점토공예 등 특수재활요법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비록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만은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병을 얻기 전까지 저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단지 병이 생겼다는 이유로 소중한 제 삶을 포기할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삶이란 최선을 다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현재 박수학씨는 태백중앙병원에서 ‘도우미’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대신해 심부름을 해주고, 신규 환자들에게는 의료진을 대신해 병원생활정보를 알려주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폐증이 완치돼 그가 웃으며 병원문을 나서는 것을 보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사랑과 삶에 대한 의지는 앞으로도 많은 산재환자들에게 훌륭한 귀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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