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入虛簷明照榻 달은 빈 처마에 들어 밝게 책상을 비추고
烟生疎戶翠連山 연기는 성긴 문에서 생겨 푸름이 산에 이어졌네
蕭條雖甚吾猶樂 썰렁함이 심하대도 나는 오히려 즐거우니
爲是身心兩得閒 몸과 마음 모두 한가하기 때문이네
김언기(金彦璣),《유일재실기(惟一齋實紀)》
烟生疎戶翠連山 연기는 성긴 문에서 생겨 푸름이 산에 이어졌네
蕭條雖甚吾猶樂 썰렁함이 심하대도 나는 오히려 즐거우니
爲是身心兩得閒 몸과 마음 모두 한가하기 때문이네
김언기(金彦璣),《유일재실기(惟一齋實紀)》
[해설] 흔히 유학의 본고장이라면 안동을 꼽고, 스승하면 퇴계 이황 선생을 든다. 그러나 안동에는 퇴계 선생 못지않게 큰 스승이 있었다.
“복주(福州, 안동)의 학문이 흥성한 것은 선생의 창도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라는 칭송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수재들을 길러 냈던 유일재(惟一齋) 김언기(金彦璣 1520~1588) 선생이 그 분이다. 위 시는 본래 율시인데, 뒤쪽 4구만 소개한 것이다.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작품이 대부분 소실되어 남은 것이라고는 이 시 정도뿐이지만, 구봉령(具鳳齡), 권호문(權好文) 등 명사들의 차운(次韻)이 이어졌던 명시이다.
아담한 초가집에서 달과 청산, 아지랑이 같은 자연을 벗 삼으며 강학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담백한 일생이 시에서 물씬 풍겨난다. 고려 때 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던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몇 편 남지 않은 시 중에 ‘뜰 가득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滿庭月色無烟燭), ‘자리에 비친 산 빛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일세(入座山光不速賓)라는 구절이 있는데, 스승으로서의 자락하는 모습이 이 시의 정서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스승의 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서로 통하는 것인가? 5월 스승의 날, 스승은 스승다운지를 고민할 때다.
후한 때의 위소(魏昭)는 “경서를 배울 수 있는 스승을 만나기는 쉬워도 타인의 모범이 되는 스승을 만나기는 어렵다[經師易遇 人師難遭]”라고 했다. 역사 속 인사(人師)들의 삶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는지?
<자료제공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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